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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50돌 맞은 세계인권선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오늘은 1948년 유엔총회가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지 꼭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세계인권선언은 그 전문에서 '인간가족 모든 성원의 평등하고도 변경할 수 없는 권리와 고유한 존엄성의 인식은 세계평화와 정의.자유의 토대다' 라고 천명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인권법의 기본이 된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을 비롯해 인종차별금지협약.고문방지협약 등은 세계인권선언을 그 모체로 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유엔과 인권단체들이 인권분야에서 이룩한 업적은 실로 괄목할 만하다.

유엔인권위원회가 해마다 토의하는 각국의 인권상황, 국제사면위원회 (AI) 의 연례보고서 및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활동 등에 대해 이제는 관계국들이 등을 돌릴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다른 한편 냉전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인종적.민족적 분쟁과 아직도 남아 있는 일부 독재정권 등은 세계 여러 곳에서 조직적인 인권침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

또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위협하고 있는 빈곤과 저개발, 어린이.노약자.여성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권남용은 인권에 대한 중대한 장애요인이 되고 있어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극복해야 할 21세기의 큰 과제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인권선언 50주년을 기념함에 있어 주목할 만한 사태발전에 유념해야 한다.

지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이 '인도 (人道)에 반 (反) 한 범죄' 혐의로 영국에서 곤욕을 겪고 있고, 르완다.유고 전범재판소 등은 내란의 과정에서 범해진 집단학살의 책임자를 재판하고 있다.

또 지난 7월 로마의 교관회의에서는 앞으로 인도에 반한 범죄 등을 처벌하기 위한 국제형사재판소 규정을 채택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인권보호와 신장을 향한 획기적 분수령이 되고 있다.

이상에서 볼 때 인권증진을 국정의 중요한 목표로 표방하고 있는 김대중 (金大中) 정부의 인권정책은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정당한 관심사임을 재확인하고 인권의 범세계적 신장을 위한 파트너십에 적극 동참하면서 특히 아래 세 가지 사항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첫째, 이미 입법화가 추진되고 있는 '독립적이고 강력한 인권위원회' 가 하루 속히 창설돼 인권사상의 고취를 위한 교육은 물론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구제 등 인권보장과 증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케 해야 한다.

金대통령의 인권운동가로서의 성가 (聲價) 와 한국민의 민주주의 역량, 그리고 국제사회가 한국에 대해 거는 기대 등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둘째, 우리의 대북 (對北) 정책에 있어 북한의 인권문제가 차지하는 우선 순위를 정확히 설정하고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갖는 심각한 우려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정립해야 한다.

우리는 유엔인권소위원회 등 유엔메커니즘이 북한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범 억류.불법처형.기본권 제한 등 사태에 대해 지속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인권분야에서 아시아지역 협조체제를 구축하는데 기선 (機先) 을 취해야 한다.

이미 유럽.남미.아프리카에서는 지역적 인권협정을 근거로 인권위원회가 지역적 차원에서 인권신장을 위해 상호협조하면서 주민의 진정서 처리 등 역할을 하고 있으나, 아시아 지역에는 그러한 국제기구도 기능도 없다.

이제 아시아에서도 민주주의의 조류는 거역할 수 없는 추세이므로 우리는 아시아적 다양성 속에서도 이 방면에서 의미 있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인권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아직도 많은 괴리 (乖離)가 있으며 그것은 현재의 역사발전단계에서 볼 때 불가피하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이 반세기전에 설정한 숭고한 목표는 21세기 이후에 있어서도 인류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도전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

높은 도덕적 차원에서 이정표를 설정해야 할 우리의 인권정책은 21세기를 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한국의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인권증진을 위한 국제협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 (同參) 하는데 있다 하겠다.

박수길(고려대 석좌교수.前 駐유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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