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왕성한 활동 '보따리'연작 김수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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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수많은 헌 옷감과 옷가지를 보자기로 싸는 '보따리' 작업. 현재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현대미술전 - 시간' 의 출품작가 김수자 (41) 씨의 활동은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훨씬 인지도가 높다.

근래에도 로테르담 마니페스타 (96년) , 도쿄 '디 - 젠더리즘' 전, 토론토 댄스 시어터와 함께 한 퍼포먼스 (97년)에다 올해는 3대 비엔날레로 꼽히는 시드니와 상파울루에 불려다니느라 눈코뜰 새 없었다.

그는 다시 지난 1일 뉴욕으로 날아갔다.

로어 맨해튼 컬처 카운슬의 프로그램 수혜자로 선정돼 앞으로 5개월간 다른 작가 10여명과 함께 스튜디오를 제공받는다.

그는 원래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 내내 평면 위의 작업에 엎드려 있다 문득 배면 (背面) 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의 유품이었던 옷가지를 꿰매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바느질은 안과 겉을 드나들며 옷감과 옷감을 이어나가는 '연속' 과 '순환' 의 개념이지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오브제를 천으로 감거나 보따리로 헌 옷을 싸는 일로 이어지게 됐어요. " 그가 보따리 안에 싸는 이불조각은 대부분 결혼할 때 신부가 마련해 온 혼수다.

이 천조각들을 꿰매 잇고 보따리로 묶으면서 여러 상반된 인생의 요소들을 함께 엮어 넣는다.

"남과 여, 몸과 영혼, 시간과 공간, 이상과 현실…. 보따리 안에는 이런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 2, 727㎞를 달려 상파울루에 도착한 보따리트럭의 여정인 '떠도는 도시들' 은 이 모든 행동을 하나로 묶는 '지구 위 드로잉' 이라고 한다.

그는 흥미롭게도 자신이 탈출하려 했던 '평면' 으로 다시 회귀하려 한다.

그 일단을 마니페스타 기간 중 미술관 카페테리아에 설치했던 색색의 테이블보로 보여줬다.

" '씌운다' 라는 행위에 행이나 불행, 만남과 이별 등 인간 만사 (萬事)가 다 포함돼있어요. 제가 사용하는 이불보를 태어남에서 죽음까지를 설명하는 틀 (frame) 로 보기 때문이지요. " 가장 일상적이지만 가장 혁신적인, 무엇을 만들겠다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경지를 추구하고 싶다는 그의 설명에서 선 (禪) 적인 느낌마저 든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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