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분단’이 아니라 ‘건국’을 말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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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지난 60여 년간 지속된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의도적으로, 또는 관성적으로 무시해 온 두 가지 사실이 있음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해방은 자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외세인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부세력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며, 해방은 곧바로 독립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또 당시의 국제정세나 힘의 논리에 대한 무지를 스스로 폭로하는 주장도 있어왔다. ‘연합국에 대한 일본의 항복이 일주일만 늦었더라도 전후 협상에서 우리가 많은 것을 얻었을 것’ 또는 ‘좌우 합작이나 남북 협상이 잘되었다면 통일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식의 분석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정치사회적 무질서에 대한 책임회피에 지나지 않는 말이다. 갑자기 찾아온 광복으로 독립에 대한 준비가 거의 전무했던 상황에서 한반도의 누가, 그리고 어느 세력이 초강대국 미국과 소련을 상대할 수 있었겠는가. 김일성을 앞세워 북한만의 단독정부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는 스탈린의 야심 찬 계획이 만천하에 공개된 마당에 가정법을 동원한 역사 분석은 자기 기만으로 가득 찼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해방과 광복을 ‘건국’ 쪽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분단’ 쪽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당시의 한반도 연구에서 국제정치적 분석은 외면하고 내재적으로만 접근하려는 우(愚)를 범한 사람들이다. 분단사관의 맹점에는 ‘통일지상주의 역사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분단은 곧 전쟁을 의미했으며 따라서 김일성에 의한 6·25 전쟁은 통일을 위한 불가피했던 국내 문제였다는 식의 ‘허무개그’ 수준의 주장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불행한 역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라고 보는 역사인식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잠정적이고 임의적 체제이며 통일정부로 가기 위한 과도 체제라는 위험천만한 주장을 학생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펼치는 교사들도 있다.

이제 우리는 8·15 해방을 ‘분단’이 아닌 ‘건국’과 연결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혹독한 국내외적 악조건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건국한 ‘건국의 아버지들’의 무용담도 후손들에게 이제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때가 된 것이다. ‘당시 우남(雩南) 이승만이 택했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로의 방향 설정은 불가피한 진로였다’는 언급은 적절치 못하다. 여러 여건으로 볼 때 당시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도, 건국의 지도자들은 이런 절망적 국면을 극복하고 국가 건설이라는 ‘기적’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해방 60년이 지났다.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었던 해방 3년 공간 속에서 정치세력들 간의 온갖 이전투구와 국내외적 악조건을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서막을 연 우남 이승만의 업적은 재평가돼야 마땅하다. 선입견과 주관적 주장이 배제된 철저한 사료 중심 연구와 객관적 분석에 기초한 ‘대한민국 건국 정사’를 후세에 넘겨 주어야 할 책무는 이 시대를 사는 국민 모두가 지고 있는 것이다.

김일주 ㈔건국 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고려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