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어떻게 짰나]빚내서 경제 살리고 실업자 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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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해 예산안은 정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빚' 예산이다.

국민 1인당 1백87만원의 세금을 내면서도 적자를 메우기 위해 13조5천억원의 국채를 발행하게 된다.

여야 협상라인이 뒤편에서 청문회 등 정치 현안을 해소한 후에도 계수조정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빚 얻어 꾸려가는 형편에 예산관련 민원을 반영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내년 예산안을 '경기진작' 과 '실업자대책' 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농어촌.교육.국방 등 역대 예산의 3대 성역 (聖域) 이 상대적으로 희생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방예산의 경우 삭감규모가 5백억원으로, 작긴 해도 창군 이래 처음으로 감액 편성됐다.

교육투자에서 8천9백억원, 농어촌 지원에서 4천5백억원이 각각 줄었다.

실업자 보호비는 실직자가 2백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해 일찌감치 올해 대비 45% (2조6천억원) 를 증액시켰다.

한나라당도 예산편성의 기본 취지에는 동조했지만 예산의 '구조조정' 을 들고나왔다.

공공부문.공공근로사업.사회간접자본 (SOC) 등 곳곳에 '군살' 이 배어있다는 지적과 함께 5조4천억원을 보다 효율성 높은 사업에 쓰자고 주장했다.

일례로 공공부문의 경우 "민간 근로자들은 30% 이상 월급이 깎였는데 공무원이 기본급 10%만 삭감해 놓고 고통분담을 호소할 수 있느냐" 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의 야당총재 취임 일성 (一聲) 이 '소외계층' 지원인 점을 상기시키며 농어촌.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예산심의 20일 내내 SOC 투자비가 무절제하게 삭감된 점을 물고늘어졌다.

정부가 '긴축재정' 이란 이름을 내걸고 주로 영남권 사업비가 큰 폭으로 깎였다는 인식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공공근로사업비 2조원 중 상당부분을 SOC등으로 돌려 일자리를 늘리자는 주장에는 지역사업을 살려내겠다는 정치적 이해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적자예산과 긴축이란 두 가지 제약 때문에 야당의 주장이 반영되는 데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금리하락에 따라 국공채 이자 절감분이 1조4천억원 생겨났지만 교원정년 단축에 따른 퇴직금과 공무원연금 융자금 상환용 등으로 이내 바닥이 났다.

김원길 (金元吉) 국민회의 정책위의장은 진작부터 "아무리 고민해봤자 손대기가 쉽지 않을 것" 이라며 예산 증.삭감액이 크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결국 여야가 진통 끝에 들고나온 예산은 '경제살리기' 와 '실업자 보호' 라는 정부 제출안의 양대 골격을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국민회의가 당 차원에서 배려한 장애인.여성 관련 예산도 예년보다 후하게 배정됐다.

한나라당은 공공근로사업 일부를 지역개발에 돌리는 등 나름대로 성과를 올렸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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