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일본의 아시아 리더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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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 는 메이지 (明治) 시대 일본의 계몽사상가로 유명하다.

인권을 존중하고 일본의 서구화를 주장한 합리주의자였던 후쿠자와는 1872년 출판한 '학문의 권장 (勸奬)' 머리말에서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고 썼다.

후쿠자와는일본인의 인권은 존중했지만 다른 나라 국민의 인권은 멸시했다.

일본은 '터럭만큼도 도움이 안되는 악우 (惡友)' 인 중국.조선 등 아시아국가들의 대열에서 벗어나 서양 문명국가들과 진퇴를 같이하라고 주장했다.

소위 탈아입구론 (脫亞入歐論) 이다.

탈아입구론에 따라 후쿠자와는 일본의 대외침략정책을 강력히 옹호했다.

그후 일본은 아시아연대 (連帶) 를 표방한다.

구미의 식민지배를 타파하고 아시아 제 (諸) 민족의 해방과 번영을 추구한다는 대동아공영권 (大東亞共榮圈) 주장이다.

중.일전쟁 중이던 1938년 발표된 대동아공영권의 실체는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목적으로 한 아시아 경제블록 결성이었다.

겉으로는 아시아의 생존과 번영을 보장한다고 해놓고 민족독립운동을 철저히 탄압했다.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 민중의 줄기찬 저항과 연합군의 반격으로 붕괴하고 말았다.

전후 (戰後) 일본은 한동안 아시아를 잊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지금 일본은 다시 한번 탈구입아 (脫歐入亞) 로 전환중이다.

대동아공생권 (共生圈).대동아공엔 (円) 권이라는 신조어 (新造語) 까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아시아인들에게서 존경은 받지 못한다.

국가에 대한 존경심은 지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이아시아국가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반성에 인색한 것이다.

정치지도자들은 과거사에 대한 진실된 반성보다 축소 또는 합리화에 급급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거인일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아직 성인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맥아더의 '일본 12세론 (論)' 은 아직도 유효하다.

김종필 (金鍾泌) 총리는 방일 (訪日) 중 일본에 아시아의 리더가 돼줄 것을 요구했다.

金총리의 의도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고 주문한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그것을 인정할지, 무엇보다 일본 자신이 그만한 그릇이 되는 나라인지. 일본의 아시아 리더론 (論) 은 아직 설익은 구상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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