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전자·조선등 일부 기업 뜻밖 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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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LG그룹 최고경영진은 최근 주요계열사의 연말 경영성과 평가서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주력인 정유. 화학. 전자 등의 영업실적이 당초예상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LG관계자는 "적자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수백억~수천억원에 이르는 흑자를 기록한 계열사가 여럿 있었다" 고 말했다.

삼성. 대우. SK 등 다른 그룹들도 마찬가지. 심각한 불황으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는 가운데도 일부 우량계열사의 경영성과는 당초기대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계열사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부 계열사의 성과가 두드러진 것은 매출.수출(물량기준) 등은 예년수준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환율상승 및 경영구조개선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몸집 줄이기' 로 비용을 최소화했고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강력한 감시로 그룹내 어려운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원을 못하게 된 것도 흑자에 보탬이 됐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주로 전자.조선업종의 수출기업과 일부 정보통신업체들이 재미를 보고 있다" 면서 "몇몇 기업은 흑자가 많이 나자 적극적으로 빚을 갚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 예상외의 성과 = 삼성전자는 올 매출이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어난 20조5천억원에 이르고 흑자도 7천억원 (경상이익 기준)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부문의 흑자는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LG 역시 수출증가에 힘입어 전자 부문 매출만 지난해보다 10% 안팎 증가한 10조1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밖에 정유.텔레콤.화학.정보통신 분야도 환차익과 매출증가 등에 힘입어 상당한 흑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LG관계자는 "반도체 부문이 상반기중 2천5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가장 우려됐으나 하반기 들어 가격이 회복돼 적자가 2천여억원 수준으로 개선될 전망" 이라고 말했다.

SK그룹도 주력인 텔레콤.정유 부문에서 대규모 흑자를 기록해 내심 미소를 짓고 있다. 특히 SK텔레콤은 연초 개인휴대통신(PCS) 등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고전을 각오했으나 신규수요 증가에다 영업을 강화한 덕에 매출이 지난해 수준인 3조5천억원 (경상이익 2천억원)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포항제철의 매출은 지난해 (9조7천억원)보다 14% 늘어난 11조1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며, 순이익도 30년 만에 최고인 1조2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 연속 2년 적자이던 동원산업도 올해는 5백억원 가량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자금난설' 에 휘말렸던 대우 역시 일부계열사의 매출이 좋고 특히 수출은 30% 가량 증가했다는 게 그룹측의 설명. 대우는 상반기중 쌍용자동차 인수로 인해 9백억원 가량의 적자가 발생했으나 하반기 들어 금리하락으로 금융비용 부담이 줄고 조선. 가전. 무역 부문이 호조를 보여 그룹 전체로는 6천7백억원의 흑자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종별로는 환율상승으로 가장 덕을 본 것이 조선업계. 전에 수주했던 물량의 환차익이 상당한 데다 올해 수주실적 (1백45척.8백51만t)이 좋아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의 경우 올 매출목표 (7조8천억원)를 무난히 달성해 3천억원 안팎의 흑자가 예상되며 대우. 삼성. 한진중공업도 모두 흑자를 낼 것" 이라고 전망했다.

◇ 왜 이익이 많이 났나 = 환율상승과 불법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가 흑자증가에 큰 몫을 했다는 평가.

지난해 달러당 8백원대이던 환율이 올해 1천3백원대로 뛰는 바람에 수출물량이 전년과 비슷한 데도 원화로 환산된 영업실적은 크게 호전됐다. LG.SK 등 정유업계가 지난해 적자에서 올해는 모두 흑자로 돌아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

한 업계관계자는 "이밖에도 올 들어 각 기업이 투자.인건비 등 대대적인 비용감축에 나선 결과 그 효과가 가시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사가 잘된 계열사가 그룹내 다른 부실업체나 신규사업에 지원해 주던 관행이 사라진 것도 주력업종의 흑자에 도움이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민호.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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