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窮寇莫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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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이스라엘은 건국초부터 '디모나' 란 암호명의 핵개발계획을 추진, 1970년께 성공을 거뒀다.

여기에 참여한 기술자 한명이 영국 반전 (反戰) 주의자들에게 기밀을 누설했다고 1986년 본국으로 납치돼 국제적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바누누란 이름의 이 죄수는 간첩죄로 12년간 독방에서 면회조차 못하고 지내다가 몇달전 겨우 산책을 허락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핵무기보유에 대해 이스라엘은 긍정도 부정도 않고 버틴다.

긍정했다가는 서방세계, 특히 미국의 여론이 악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핵무기 통제 압력이 들어올 뿐 아니라 미국의 군사.경제원조도 끊길 염려가 있다.

그래서 밖에서 자기네 핵무기를 갖고 무슨 소리를 하든 아무 대꾸가 없다.

주변 아랍국들은 이스라엘 핵무기에 국제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야단이지만 국제기구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고립된 나라는 핵무기에 매력을 느낀다.

남한도 70년대말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는 통설이 얼마만큼 확인되고 있는데, 이때는 월남 패망과 주한미군 철수로 안보위기감이 높던 때였다.

북한이 공산권 붕괴후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것도 소련이란 방패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소련해체로 북한은 천애고아 같은 신세가 됐다.

군사.경제 양면에서 소련은 절대적 의지의 대상이었다.

무기 사올 돈이 없는 북한의 군사력은 몇년 안가 장비의 낙후로 제풀에 무너질 전망이다.

개방으로 산업경제를 일으킬 길도 열심히 알아봐 왔지만 미국의 경제제재가 꿈쩍 않고 있다.

4년 전 제네바에서 합의된 4개항 중 하나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정상화였다.

"합의후 3개월내 양측은 통신 및 금융거래에 대한 제한을 포함한 무역 및 투자제한을 완화시켜 나감" 이란 대목은 6.25 이래의 경제제재를 풀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합의 몇주일후 공화당이 미국 선거에서 대승, 의회를 장악한 후 미국측 의무이행을 늦춰 오고 있다.

도둑을 쫓아도 막다른 골목으로는 쫓지 않는 것이 옛사람들의 지혜였다.

북한이 무기개발에 매달리는 것은 막다른 골목으로 뛰어드는 짓이다.

외화 획득도, 자기방어도 그 길밖에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측 햇볕정책을 미국측이 수긍하고 금창리 핵의혹 문제에서도 한발 물러선 것은 남북관계의 큰 진전이다.

상대방을 비난만 하기보다 내 할 도리를 잘 살펴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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