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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위원장에게 묻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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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 (崔章集.고려대 정치학) 교수의 이념엔 무슨 문제가 있는가.

그의 6.25전쟁관과 현대사 인식을 둘러싸고 벌어진 때아닌 '사상논쟁' 으로 지식인 사회가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시민들은 논쟁의 실체와 진실에 대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는 반응이다.

중앙일보는 논쟁의 소모적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당사자인 崔위원장으로부터 지금까지제기된 모든 문제들을 털어놓고 들어보는 특별 인터뷰를 가졌다.

이는 논쟁이 시작된 뒤 崔위원장이 처음으로 모든 것을 밝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17일 오전 10시부터 4시간동안 서울 광화문 정책기획위원장실에서 진행됐다.

崔위원장 인터뷰에는 문병호 본사 편집국장대리와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철학박사).이동현 현대사전문기자 (정치학박사)가 나섰다.

[만난사람=문병호본지 편집국장대리]

- 법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위원장의 역사관.국가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핵심은 6.25전쟁관입니다.

단도직입으로 전쟁의 책임이 어디에 있습니까. 남쪽입니까, 북쪽입니까. "말할 것도 없이 김일성 (金日成) 을 정점으로 한 당시 북한 정치지도부에 있습니다. 이들이 전쟁을 결심함으로써 일어난 것이 한국전쟁입니다.

저는 추호도 북한의 전면 남침을 의심해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제 글 어디에도 이 점은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

- 그런데 왜 논란이 계속될까요.

"북한의 전면 남침을 전제로 한국전쟁에 대해 다양한 해석과 의미 부여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전쟁은 좁게 보면 한반도에서 38선을 중심으로 일어난 남북한간의 전쟁이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세계적 의미를 갖는 전쟁입니다.

예컨대, 미.소가 2차대전 직후 세계 질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두 진영간의 대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에 국한시켜 볼 때, 남한 내부에서의 이념적 갈등과 남북한의 첨예한 이념 대립의 결과물이기도 하죠. "

- 6.25를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한 것이 문제의 핵심 아닙니까.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게 저는 한국전쟁을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정확하게 인용부호를 달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킨 측면은 있지만, 저의 본의는 아닙니다.

다만 사건의 본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좌파쪽의 용어를 빌려쓴 것이 오해를 부른 것 같습니다.

그래서 93년에 발표한 글에서는 "북한이 주도한 이른바 '민족해방전쟁' " 이라고 인용부호를 붙였습니다.

한국전쟁을 연구하기 시작한 80년대 중반, 당시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전통주의에서 쓰는 용어만 가지고는 당시 실상들을 정확하게 서술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심끝에 용어 사용의 확장이란 측면에서 과감하게 좌파들이 사용하는 용어들을 끌어다 쓴 겁니다. "

- 그렇지만 민중해방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에 계급적 시각이 전제돼 있는 것 아닌가요.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글에서도 친북주의나 친김일성주의를 표방한 적이 없습니다.

그같은 용어 역시 제 가치로 수용한 적은 없고, 단지 서술적 용어로 사용했을 뿐입니다. "

- 90년에 발표한 글에는 '한국전쟁은 통일지향적 민족해방전쟁의 성격을 갖는 내전으로부터 시작했다' 고 한 반면, 96년에 나온 글에는 '한국전쟁은 전쟁을 통한 공산주의 통일을 지향했던 전쟁으로 시작했다' 고 정의했습니다.

왜 입장이 바뀌었습니까.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전쟁에 관한 글을 처음 쓴 것이 80년대 말과 90년 사이인데 그때는 아직 민주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이행기였습니다.

당시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역사적 기원 내지 조건이 무엇인지 뿌리를 추적하는 차원에서 한국전쟁을 분석했기 때문에 상당히 비판적이었습니다.

그 글을 96년에 수정 보완할 때는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차분하게 한국전쟁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후자의 글이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두 글이 톤이 다르고 강조점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글 속에 흐르는 민중적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

- 미군의 6.25 참전과 국군.미군의 38선 돌파를 제국주의정책의 발로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북한의 전쟁도발 책임을 호도하고 대한민국과 미국의 정책을 비난하는 태도 아닙니까.

"북한이 남침했을 때, 미군이 즉각 개입한 것은 지극히 정당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군과 미군이 38선을 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당시 영국을 비롯, 유럽 각국은 3차대전의 발발을 우려해 38선 돌파를 반대했습니다.

중국 또한 미군의 38선 돌파시 개입할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38선을 넘게 될 경우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전쟁이 끝날 수 있는 게 아니라 전선이 만주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충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강조한 것은 38선을 넘는 문제가 세계대전으로 발전할 수 있고,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는 데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

-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북한 주민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남한 주민의 피해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한국전쟁을 민중적.평화주의적 시각으로 인식하려고 합니다.

전쟁 당시 미군이 북한의 주요 지역에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닌 공중폭격과 함포사격을 가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엄청난 희생을 당했습니다.

민족적 견지에서 대참극을 당했는데, 이같은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표현을 쓴 것입니다.

그렇다고 남한 주민의 피해를 외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

- 남한 주민이 겪었던 피해가 더 컸던 것 아닙니까.

"남쪽의 피해가 컸다는 것을 물론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참고한 책에는 희생자수와 전답.가옥 파괴 등의 구체적 수치가 나오는데, 그 통계를 보면 북한 주민들이 제일 많이 희생당한 것으로 돼 있어요. 북측의 피해를 강조하는데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

- 전쟁초기 적지 않은 남한 주민들이 북한 인민군을 환영 지지했다고 표현했는데 어디에 그런 근거가 있습니까.

"브루스 커밍스의 저서에서 일부를 인용했는데, 인용부호를 달지 않아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제 실수를 인정합니다. "

- 대표적 수정주의 학자인 커밍스의 주장을 인용부호 없이 인용한 것은 수정주의에 동의하는 것 아닙니까.

"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시카고대학의 모턴 캐플런 교수에게 배웠습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보수시각을 가진 학자였는데 군사지도자로서의 스탈린을 높게 평가했어요. 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정주의시각에서 본다면 한국전쟁도 결국 미국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힘으로 제어하기 위해 전쟁 상황을 만들고 결국에는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저는 이러한 수정주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공산측에 책임을 물으려는 전통주의 논리에도 찬성하지 않아요. "

- 그렇다면 한국전쟁에 대한 위원장의 시각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저는 '동태적 대쌍관계 (interface dynamics)' 라는 제 나름의 시각으로 한국전쟁을 보려고 했어요. 다시 말해 미.소가 세계적 수준의 상호 경쟁하는 역학관계에서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죠. 또 하나는 기존의 전통주의와 수정주의가 너무 외교정책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해석했는데 여기서 벗어나려고 했어요. 전쟁 과정에서 희생당한 민중 (people) 의 측면을 들여다보려고 애썼죠. 다시 말해 민중을 전쟁의 중심적인 행위자로서 포함시킨 겁니다.

결국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이론을 모두 뛰어넘어 민중의 행위와 희생이라는 측면에서 전쟁을 새롭게 조명해 보려는 것이 한국전쟁을 보는 저의 시각입니다.

이를테면 '제3의 길' 이라고나 할까요. 제 글을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구성 자체가 매우 복합적인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국제정치.남북한 관계.남한 정치.지방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언급돼 있어요. 그래서 일반 독자나 비전공자가 보면 이해하기 힘든 측면도 있지요. 또 용어들도 익숙지 않을 겁니다.

간혹 진보적인 용어들이 눈에 띄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관점에서 썼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 최근 저서에서 "이승만 (李承晩) 정권은 미군정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부수립 이후 정당성의 문제에 직면한 반면, 북한의 분단정권은 민족해방세력의 지지를 받고 탄생했다" 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는 건국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말 아닙니까.

"저는 건국 당시 남한정부에 정통성이 있음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민중적인 시각으로 역사나 체제를 인식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전체주의 통제나 억압을 대단히 싫어합니다.

북한체제는 저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체제입니다.

남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이고, 또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지낸 분이었기 때문에 이런 분이 정부를 구성했다는 자체가 정통성을 충분히 가질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

- 이승만 정권에 대해 한결같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오지 않았습니까. "이승만 정권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건국 과정에서 폭넓은 민족운동 지도자들을 참여시켜야 했는데, 추종세력들을 제외한 나머지 민족진영 인사들을 배제했기 때문이죠. 이러다 보니 건국의 지지기반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어요. 이것은 李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 중요한 제약조건이 되었죠.

둘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李대통령이 건국과정에서 공산주의와 격렬하게 싸울 때 공산주의와 전혀 상관없는 많은 민중들이 이념투쟁의 희생물이 됐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와의 투쟁은 불가피했다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들이 '빨갱이' 로 몰려 억울하게 희생되는 것은 피해야만 했어요. "

- '해방8년사의 총체적 인식' 이란 정모박사와의 공동논문에서 해방직후 신탁통치 찬성세력을 '민주진영' 으로, 반대세력을 '반민주진영' 으로 표현한 것은 납득이 어렵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만약 그렇게 표기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공동논문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쓴 글을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아 놓쳐버린 것 같습니다. "

- 같은 논문에서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 '인민민주주의 혁명' 등 좌파적 용어를 사용하셨던데 지금도 그런 인식에 변함이 없습니까.

"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잠시 말을 끊었다가) 지금 시점에서는 부적절한 표현입니다.

앞으로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 "

- 해방정국에서 우익이 반대한 신탁통치안을 받아들였어야 했다고 주장하신 것은 좌파적인 시각 아닌가요.

"미국의 신탁통치안 자체가 한반도의 분단을 막는 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좌.우 지도자들이 신탁통치안을 받아들였다면, 아마 분단은 막았을 거 예요. "

- 분단을 피하는 대신 통일된 공산국가를 건설하는 것과, 분단이 되었을 망정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부분적으로 실현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았다고 생각합니까.

"지금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분단된 형태나마 정부가 수립돼서 여기까지 온 것이 훨씬 바람직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 崔위원장을 '좌파' 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데 스스로는 어떤 성향이라고 보십니까.

"이념적 성향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이 내키지는 않습니다만 굳이 말한다면 개혁적 자유주의나 진보적 자유주의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수적 시각에서 볼 때 이것도 대단히 급진적이라고 해서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자유주의를 폭넓게 보면 건국이념이 자유민주주의이고, 심지어 극우냉전반공 보수주의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투쟁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비자유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책 실천이 있어왔습니다.

학계에서 허용되는 이념적 지평이 상대적으로 넓은 것은 사실입니다.

반면 정치와 언론 등 우리 사회를 움직여가는 영역에서는 이념적 경로가 대단히 협소합니다. "

- 한국사회에서는 자유주의도 개혁적, 심지어 진보적 요소를 갖는다는 뜻입니까.

"여러 이념들이 경쟁할 수 있는 체제, 그 이념에 따라 정치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체제, 정치적인 집단이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시장에 의해 검증되고 평가되는 것이 자유주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자유주의와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저는 이념에서 우리 사회의 다원성이 제약받지 않는 정치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에서 자유주의가 실천되기 위해선 상당한 정도로 개혁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진보성을 포함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적 상황에서 자유주의는 보수적.냉전적 자유주의와 개혁적 자유주의로의 구분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

- 개혁적 자유주의가 결국 좌파란 말 아닙니까.

"용어 사용 문제에서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지만 저는 스스로 '제3의 길' 정도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제3의 길' 을 잉태한 서구 사회민주주의와는 배경이 다릅니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라는 전사 (前史) 를 갖고 있습니다.

자유시장주의와 사회주의가 오랜 갈등의 역사 속에서 타협을 축적한 결과로 나타난 게 사회민주주의입니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그동안 국가의 적극적 사회보장정책을 핵심으로 했다면 다른 한편으로 시장중심의 신자유주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는 효율성에서, 후자는 사회적 갈등을 양산한다는 점에서 이미 시대적 한계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지향하고 싶은 것은 이 두 개를 종합하는 '제3의 길' 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너무 시장에만 일임하지 않고 정부가 분배.사회적 형평.복지 등 여러 분야에서 시장의 자율성에 제한적으로 개입하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사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기본이 되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것을 '제1의 명제' 로 삼으면서 동시에 제한적으로 국가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는 의미에서 '제3의 길' 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

- 이번 논쟁의 한 가운데 섰던 당사자로서 어떤 생각을 하며 대응해 오셨습니까.

"우리 사회는 이념적으로 대단히 관용성이 적은 사회입니다.

보수주의에서 조금 벗어날 경우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칫하면 '좌파다' '불 온하다' 는 딱지를 붙이는 분위기고 이런 상황에서 '저 사람은 좌파' 라는 딱지를 붙여놓으면 그것만큼 폭력적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지메로 한 사람이나 집단을 격리시키는 현상들이 벌어질 때 그 결과는 획일주의의 강화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경직되고 유연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다원성.역동성.창발성.개방성이 위협받게 됨은 물론 보편적 세계주의를 받아들이는 수용성이 제한되는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는 현재 상황에서 이념적 스펙트럼이 좀 넓어질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번 논쟁이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은 대중의 정치문화를 형성하는데 가장 영향력이 큰 존재입니다.

우리가 정치적 현상을 넓게 보기 위해서라도 언론이 가치나 신념체계에서 다원성을 수용해 여러가지 메뉴를 일반인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사회정치적 현상을 보는 안목을 넓히지 않고는 세계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과연 온갖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하루 빨리 다른 생각에 대한 관용을 베푸는 사회가 돼야겠습니다. "

- 언론의 공직자에 대한 사상검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번 일련의 사태에 대해 수용하기 어려웠던 것은 '학자로서는 허용할 수 있어도 공직자로서는 안된다' 는 대목입니다.

그것은 대단히 비민주적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사상검증' 이라는 표현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설사 일반 대중에게 수용되지 않는 이념이라 하더라도 내면의 정치적인 자유가 인정돼야 하는데, 이를 검증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검증하는 것으로 일제시대 고등경찰이 독립운동가에게 했던 것을 연상시키는 발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상검증이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능력이나 적성.경력을 검증하는 것으로 언론이 제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상' 이라는 말은 의미가 크게 다르며 특정 언론매체가 사상을 독점한다는 것은 폭력성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는 사람이면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 더이상 오해가 없도록 입장을 정리한 새 책을 한권 내시지요.

"그럴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

-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정리 = 김창호 학술전문기자.이동현 현대사전문기자

[약력]

- 43년 경남 밀양

- 61년 고려대 정치학과 입학, 학사 및 석사

- 미 시카고대 정치학 석사 및 박사 (박사학위 논문 '한국의 이익갈등과 정치적 통제' .83년)

- 71~73년 청와대 공보비서실 행정관

- 83년부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한국산업사회연구회.한국정치연구회 회장 역임

- 98년 4월부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 저서

▶한국의 노동운동과 국가 (열음사.85년) ▶한국 현대정치의 구조와 변화 (까치.89년) ▶한국전쟁연구 (편저.태암.90년) ▶한국 민주주의의 이론 (한길사.93년) ▶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나남.96년)▶한국 사회와 민주주의 (공저.나남.97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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