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노벨상수상 사라마구의 '수도원의 비망록'번역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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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리얼리즘에 신비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일종의 모순어법으로서 사실 (현실) 과 허구 (환상)가 초현실주의적 방식으로 뒤섞이는 것을 의미한다.

올 노벨 문학상 수상자 포루투갈의 주제 사라마구를 논하는데 있어서 이 용어보다 적확한 건 없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해학.아이러니는 기본이고 이미지의 비약, 이야기의 불연속성으로 인해 주인공들의 의식세계는 무질서하게 전개되기 일쑤다.

하지만 이를 묘사하는 그의 문학적 장치는 대개 역사적 사실 (史實) 과 사실 (事實) 로 설정된다.

사라마구의 작품으로 국내에 처음 번역.출간된 '수도원의 비망록' (상.하, 신현철外 옮김.문학세계刊) 역시 이런 틀에서 거의 어긋나지 않는다.

배경은 왕정과 교회의 대표에 의해 주도된 18세기 포르투갈 최대의 역사 (役事) 였던 마프라 수도원 건설이다.

여기에 전쟁으로 왼쪽 손목이 잘려 갈고리를 사용하는 퇴역병 발따자르와 종교재판으로 파문을 당한 여인의 딸 블리문다의 사랑이 끼어든다.

또 '하늘을 나르는 물체 (파사롤라)' 에 대한 바르똘로메우 신부의 열망은 신비감을 더한다.

이는 지배.피지배계급의 대립구도에 '인간의 의지' (작품에서는 파사롤라를 날게 하는 마지막 힘으로 설정됨) 혹은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신념을 담는 형식이다.

하지만 세사람의 9년에 걸친 하늘에 대한 염원은 결국 '이카로스의 날개' (태양까지 너무 높이 날았다가 날개가 녹아 추락해버린 그리스 신화)가 되고 만다.

하지만 "가장 높이 치솟은 새가 가장 모질게 떨어질지니" 라는 외침이 결코 좌절에 대한 자기합리화로 다가서지 않는다.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연주 같은 사랑 이야기' (뉴욕 타임즈)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과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 사이를 가로지르는 십자가' (북 디스크립션) 라는 평가가 과장이 아닌 듯하다.

사라마구의 첫 번역작품을 만나는 마음은 설렌다.

포르투갈의 역사와 수도원에 대한 기본소양이 없이는 읽어내리기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금방 소설 속에 빠져들었다가 책을 덮을 때 여운으로 맴도는 감동은 특이하다.

여기엔 감수성 넘치는 번역솜씨도 한 몫을 한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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