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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스템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으면 또 위기 올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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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左)과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가 세계 경제위기와 해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상선 기자]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곽승준 위원장(장관급)과 미국 하버드대의 리처드 프리먼(경제학) 교수는 12일 세계 경제위기가 초래하고 있는 중산층 붕괴와 관련해 “사회 불안정을 초래할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곽 위원장의 미래기획위는 3월 중산층 키우기 정책을 종합한 ‘휴먼 뉴딜’을 발표하고 추진 중이다. 이 정책에 대해 프리먼 교수는 “흥미롭다”며 “미국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내세웠던 ‘따뜻한 보수(compassionate conservative)’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대담은 11일 서울 세종로에 있는 곽 위원장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사회는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이 맡았다.

-세계 경제위기는 어떤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나.

▶프리먼 교수(이하 프)=“먼저 걱정되는 것은 고용 문제다. 경제위기가 해결된다고 해서 노동시장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걱정되는 문제는 은행과 금융 시스템의 치유다. 이게 완벽히 치유되지 않으면 몇 년 내에 또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곽승준 위원장(이하 곽)=“1997년 외환위기 때도 경제위기 속에서 중산층과 빈곤층이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당시에 빈곤층으로 떨어진 계층은 아직 못 올라오고 있다. 소득 불평등도 문제지만 이런 식으로 빈곤층이 증가하는 게 큰 문제다.”

-경제위기 외에 어떤 요소들이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있나.

▶프=“우선 세계화가 노동시장에도 영향을 끼쳐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값싼 노동력이 기존 시장경제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요소는 제조업 기술이 비약적으로 진보했다는 점이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사람의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또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상위 극소수가 대부분의 소득을 가져가는 것도 문제다.”

▶곽=“그간 정부가 잘못 만들어 놓은 시스템 탓에 중산층이 불필요한 지출을 감내하다가 빈곤층으로 몰락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 사교육비다. 평균적으로 우리 가정들이 수입의 20~50%를 사교육에 쓴다는데, 이렇게 쓰는 나라가 어디 있나. 보육비나 주거비도 같은 경우다.”

-왜 중산층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

▶프=“ 미국에서도 소비자들의 빚이 상당하다. 물론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집을 구매했다가 빚을 진 경우도 많지만, 이 또한 삶의 질을 높이려 노력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들이 금융위기로 인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이런 중산층의 붕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윤리적인 문제로 사회 불안과도 얽혀 있다.”

▶곽=“경제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2006년 기준으로 전체 국민의 60%다. 그런데 ‘나는 중산층이다’고 느끼는 국민은 28%에 불과하다. 이처럼 만족도가 떨어지면 사회 통합에 문제가 생긴다. 결국 경제위기라는 긴 터널에서 중산층을 최대한 많이 지켜 내는 나라의 경쟁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오바마 행정부가 중산층 문제 해결을 위해 구성한 태스크포스(TF)의 주요 정책은 뭔가.

▶프=“지금 의료보험 문제가 미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게 중산층을 위한 핵심 내용이다. 또 9월 중엔 중산층을 강화하기 위한 노조 관련 법안이 나올 것으로 본다. 보다 많은 근로자를 노조에 가입하게 해 임금 협상 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하는 방식이다.”

-노조와 중산층 문제의 연관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프=“근로자들이 중산층에 진입하는 주요 경로는 노조 협상을 통해서였다. 근로자들은 연금과 의료보험을 노조 협상을 통해 얻었다. 노조는 사회 전체의 중산층을 위해 움직이는 조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노조가 이런 기능을 잘 못해 사회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조만간 미국에서는 노조 시스템을 개혁해 근로자들이 노조를 좀 더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중산층을 위한 휴먼 뉴딜이 발표됐다. 어떤 취지인가.

▶곽=“휴먼 뉴딜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공약을 제시해 온 ‘따뜻한 시장경제’를 구현하는 한 방안이다. 구체적으론 세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가 중산층 탈락 방지이고, 그 핵심은 일자리를 유지·창출하고 가계 지출을 경감해 주는 것이다. 그 다음은 중산층 진입 촉진이다. 마지막은 중산층 육성이다. 공교육 강화 등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의 중산층 대책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곽=“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정부 예산이 한정돼 있으니 가계지출을 줄여 주는 쪽으로 간다는 점이다. 과거 정부는 복지 예산만 늘려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 결국 그 정도 예산을 늘린 것으로는 빈곤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중산층을 강화하기 위해선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데 묘안이 있나.

▶프=“ 첫째, 지구온난화 같은 문제를 활용해 ‘녹색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둘째, 사회안전망을 더 튼튼히 구축하는 것이다. 모든 일자리가 높은 임금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의료보험이나 연금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 ”

▶곽=“한국의 서비스업 비중은 57% 정도로 낮다. 그나마 대부분 식당 자영업이다. 이런 상황을 돌파해 생산적 서비스업을 활성화해야 양질의 일자리가 생긴다. 이를 위해 최근 정부가 발표한 ‘17대 신성장동력’에는 문화 콘텐트 및 식품산업의 육성이 들어가 있다. ”

사회=김정수 경제전문기자·논설위원

정리=전수진·남궁욱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리처드 프리먼(65) 교수=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이자 런던정경대 객원교수다. 인적자원(human resource) 분야를 전공한 세계적 석학이다. 그는 12~13일 제주에서 열리는 ‘제5회 제주평화포럼’에 참석, ‘한국의 미래-신성장동력과 휴먼 뉴딜’이라는 주제의 세션에서 기조발표자로 나선다. 조만간 한국 학자들과 함께 『1987~2007년 한국의 세계화, 민주화 그리고 노동시장과 교육 시스템 변화』라는 책을 낼 예정이다.

◆곽승준(49) 미래기획위원장=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서울시장 시절부터 도운 대통령의 핵심 정책 브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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