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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가 말하는 ‘10년 제자리걸음’ 한국 마라톤이 살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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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국 마라톤의 침체기가 길어지고 있다. 이렇다 할 스타도 나오지 않고, 기록도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마라톤 한국최고기록(2시간7분20초) 보유자 이봉주는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이들이 치열하게 경쟁해야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다”고 역설했다. [중앙포토]

세계 마라톤이 스피드 경쟁을 벌이며 2시간3분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한국 마라톤은 2000년 2월 이봉주(39·삼성전자)가 세운 2시간7분20초의 최고기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한국 마라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15일 개막하는 2009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한국은 8명(남 5명, 여 3명)의 남녀 마라토너들을 출전시키지만 멀찌감치 달아난 세계 수준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전성기의 마지막 계승자였던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의 입을 통해 한국 마라톤의 희망을 찾아본다. 

◆“치열한 경쟁이 필수”=이봉주는 열악한 저변과 인프라, 선수들의 나약해진 정신력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핵심은 경쟁 시스템이었다. 그는 “내가 마라톤을 시작할 때만 해도 김재룡, 김완기, 황영조, 김창우 등 쟁쟁한 선수가 많았다. 서로 눈치를 보며 한발 더 앞서기 위해 새벽부터 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황영조라는 라이벌이 있었기 때문에 세계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이봉주는 이어 “요즘 후배들이 주어진 연습 스케줄만 소화하기에 급급하고 쉽게 포기하는 것은 치열한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경쟁을 불러일으킬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정책이란 바로 저변 확대를 통한 기록 경쟁을 의미한다. 

◆“될성부른 떡잎 발굴이 우선”=이봉주는 경쟁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로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 마라톤에 전념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라톤에 적합한 인재들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선수들은 힘든 운동을 안 하고 인기 스포츠로 빠지려고 한다”며 “마라톤이 다시 살려면 인재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포상금 정책의 변화를 예로 들었다. 그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마라톤 포상금이 크게 늘었다. 상금이 단기적인 동기부여가 되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다”며 “차라리 이 돈으로 유망주를 찾아 다른 종목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쓰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최근 육상연맹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외국인 지도자 영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일부 외국인 지도자가 필요한 종목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 마라톤의 문제는 지도자가 아니라 인재 발굴을 못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에서 한국 마라톤의 희망을=‘한국 마라톤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봉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를린대회에 출전하는 지영준(경찰대)과 황준현(한국체대)에게 기대를 건다고 했다.

그는 “지영준은 최근 기록이 상승세이고 경험이 많다. 황준현도 강한 정신력만 갖춘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인환 삼성전자 육상단 감독은 “지영준은 지난 4월 대구마라톤에서 30∼35㎞ 구간을 14분30초대, 35∼40㎞ 구간을 15분대 초반에 통과했다.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잘 관리한다면 6분대 진입도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한국 마라톤팀은 해발 2000m 고지대인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고지 적응을 마친 후 13일 베를린에 입성한다.

오는 10월 대전 전국체전에서 고향인 충남 대표로 마라톤 인생의 대미를 장식할 이봉주는 “마지막 도전에서 후배들에게 국내 1위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로 시야를 넓히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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