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 70년대 악몽 '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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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국제시장에서 중동산 두바이유는 배럴당 0.2달러 오른 37.71달러에 거래돼 사흘 연속 37달러대를 유지하며 사상 최고가 행진을 하고 있다. 국내에 수입되는 원유의 79%를 차지하는 두바이유는 1990년 9월 28일 37.04달러를 기록한 이후 14년 만에 다시 37달러대를 넘어선 것이다.

북해산 브렌트유도 0.45달러 올라 40.83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 행진 중이다. 지난 3일까지 나흘 연속 사상 최고치를 깼던 미국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석유수출국 기구(OPEC)의 공급능력 확대 추진 소식이 전해지면서 44.11달러에서 42.70달러로 떨어졌지만 하락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별로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20달러 시대로 돌아가기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세계에너지연구센터(CGES)는 두바이유가 하반기에 평균 35.95달러(연평균 33.8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최근 전망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33.00달러(연평균 32.90달러), 케임브리지에너지연구소(CERA)는 32.84달러(연평균 32.12달러)를 예상했다.

지난해 두바이유의 평균 가격이 26.79달러였던 사실에 비춰보면 1년 만에 배럴당 적어도 5달러 이상 오를 것이란 얘기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유 수요가 예상보다 많이 증가하고 OPEC의 잉여 생산능력이 제한돼 있다는 점을 유가 불안 원인으로 꼽고 있다. IEA는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세계경기 회복과 중국의 수입 증가로 지난해보다 250만배럴 늘어난 814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세계 공급량의 40%가량을 차지하는 OPEC가 생산쿼터(하루 2350만배럴)를 하루 360만배럴 초과해 생산함에 따라 공급부족 사태는 아직 없다. 그러나 원유시설 테러 등 유사시 가동할 수 있는 OPEC의 추가 생산 여력은 하루 60만~100만배럴에 그쳐 작은 위기가 유가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OPEC 내부에서는 2000년 도입한 유가 밴드를 28~32달러 선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OPEC는 급격한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22~28달러 선에서 생산량을 조절해 왔는데 가격 수준을 30달러 대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구자권 한국석유공사 해외조사팀장은 "당분간 유가는 20달러 시대로 돌아가기 어려우며 30달러 시대가 한동안 굳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장세정 기자

28달러 예상해 다 짜놨는데…
정부 목표치 휙 뛰어넘자 당황

지난해 말 정부는 2004년 경제운용 계획을 짜면서 국제 기름값을 중동산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22~24달러로 잡았다. 정부는 올 들어 유가가 계속 오르자 국제유가 기준을 배럴당 28달러 안팎으로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을 다시 짰다. 그러나 유가는 정부가 생각보다 더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정부의 거시정책 목표치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올해 목표치는 ▶경제성장률 5%대 ▶실업률 3%대 초반▶소비자물가 3%대 중반 ▶경상수지 200억~250억달러였다.

이중 소비자물가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두바이유 10일 평균가격이 35달러를 넘어서면서 7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4%나 올랐다. 생산자물가도 지난해보다 7%나 올랐다. 연간 물가억제선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한국은행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소비자물가가 0.1%포인트 오른다고 분석했다. 경제성장률과 경상수지도 악화할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유가가 배럴당 2달러 올랐을 때 경제성장률은 0.28%포인트 떨어지고 무역흑자는 13억3000만달러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거시경제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재경부는 아직까지는 경제운용 틀 자체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예상보다 유가가 더 오르고 있지만 정부는 목표치를 수정하지 않고 목표치 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yoonn@joongang.co.kr>

운송·물류업계 '비상 경영'
연료관리팀 만들고 유류할증료 등 올려

업계도 장.단기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항공.해운.자동차.석유화학 등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업종의 업체들이 비상이다.

연초 올해 유가를 배럴당 30달러 수준으로 전망했던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연간 각각 4000억원과 1200억원의 추가 부담을 예상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고유가에 따른 위기 관리를 위해 최근 '연료관리팀'을 신설했다. 이 팀은 출발지와 도착지 중 유가가 저렴한 곳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여름 성수기가 지난 뒤에도 고유가가 이어질 경우 일부 적자 노선의 감축도 검토하고 있다.

한진해운.현대상선 등 해운업체들은 지난 4월 유류 할증료(유가를 반영한 추가 요금)를 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185달러에서 230달러로 올린 데 이어 9월께 추가 인상을 추진 중이다. 한진해운의 경우 유가가 1달러 오르면 연간 36억원의 추가 부담이 생긴다.

자동차 업계는 휘발유 가격이 ℓ당 1400원 이상이 계속되면 올해 자동차 내수가 10만~15만대 정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올 초 71만대로 잡았던 내수 판매목표를 60만5000대로 낮췄다.

SK.LG정유.현대오일뱅크 등 정유회사들은 수입선 다변화와 원전 개발을 위한 투자 등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최익재.홍주연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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