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글씨값은 재임중 업적에 비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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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실업대책마련을 위한 한마음 바자회' 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실사구시' 붓글씨 액자는 무려 1천2백만원에 팔렸다.

명필가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이라는 직함 하나로 그렇게 비싼 값을 매길 수 있느냐는 반문이 따를 법도 하다.

하지만 글값은 바로 정신력이나 업적에 비례하는 게 일반적이다.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이상문 (李相文.중원당 대표) 씨의 설명은 이렇다.

"글의 가치는 쓴 사람의 지조.행동.사상에 좌우된다. 가령 안중근의사의 글값이 1억원에서 2억원까지 이르는 것이 상징적인 예다. " 이를 전제로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글이 1천만원이 넘는 고가를 기록하는 것은 민주투사로서의 개인사를 반영한다.

재임기간중 치적을 남기면 글값은 그만큼 더 치솟을 것" 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역대 대통령의 글값은 현재 어느 정도 수준일까. 현판형 또는 족자형 붓글씨체 기준으로 최고대우는 박정희 대통령의 몫이다.

상태가 양호하고 서체에 힘이 넘치는 글의 경우 2천만원에까지 달한다.

나라를 절대빈곤에서 건진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셈이다.

그의 꼿꼿한 성품과 기개도 한몫을 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글값은 5백만원대. 윤보선 대통령의 경우 1백만원 안팎이다.

반면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의 글값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위상이 여전히 불투명하게 흔들리고 있는 탓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도 사정이 같다.

글은 상당히 많지만 거래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마저 생길 정도다.

문제는 앞으로 등장할 대통령의 경우 붓글씨를 남기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무슨 물건이 사람들의 소장품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정신력이 담긴 '대안의 유물' 이 얼핏 떠오르지 않는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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