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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파이프를 잡아라”카스피해 기름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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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엄청난 매장량을 자랑하는 카스피해 유전의 석유 수송로를 둘러싸고 이해당사국간에 각축전이 한창이다.

이곳에 매장된 석유와 가스는 각각 2천억배럴과 24조입방피트에 이른다.

가스는 세계 최고, 석유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매장량이다.

매장량의 일부는 현재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유전에서 채굴, 러시아 영토를 경유하는 파이프로 수송되고 있다.

카스피해 자원개발권은 현재 주변 5개국과 미국.영국 석유회사로 구성된 국제석유개발컨소시엄 (AICO) 이 갖고 있다.

AICO는 석유와 가스를 걸프해 또는 지중해까지 파이프를 건설해 운송할 계획. 그러나 수송파이프의 경로는 경제적 이익은 물론 지역패권과도 연결되는 중대사여서 현재 진행중인 당사국간 '선긋기' 협상이 결렬될 경우 무력충돌로 번질 위험을 안고 있다.

◇ 국제컨소시엄 = AICO는 그루지야공화국을 경유해 흑해로 빠지는 길을 주장하고 있다.

최단거리이고 그만큼 건설비용이 덜 들어 시장에서 원유가격의 채산성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AICO는 지난 1일 독자적으로 파이프 경로를 확정, 발표하려다 이란이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미국이 반발하는 바람에 이달말로 결정을 미뤘다.

이에 따라 석유대국의 꿈에 부풀어 있던 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AICO로서는 무작정 발표했다가 전쟁이라도 발발할 경우 석유수입도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당사국들 사이에서 고심중이다.

◇ 미국 = 에너지 주도권과 지역내 교두보 확보를 목표로 터키를 통하는 파이프 건설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 회원국인 만큼 이 지역의 에너지원이 이란이나 러시아의 통제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속셈이다.

터키도 그동안 중동에서 미국의 발판 역할을 하면서 주변국들과의 불화로 피해본 것을 보상받아야 한다며 미국안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1천7백㎞ 이상의 파이프를 추가로 건설해야 하고 비용만도 40억달러가 소요된다는 점에서 AICO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 이란 = 자국영토 내에 이미 건설돼 있는 파이프를 수리해 사용하면 추가비용이 3억달러밖에 들지 않는다며 AICO를 설득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 72년 이슬람혁명후 서방의 경제제재로 매년 인플레이션율이 17%, 실업률이 25%에 이르는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다.

파이프를 유치함으로써 경제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AICO는 서방기업이 이란에 2천만달러 이상의 투자를 할 수 없도록 한 미국의 경제제재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나톨리 하메이니 이란 총리는 지난달 미국을 방문, 관계정상화 모색과 함께 설득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란이 국제테러조직을 지원하는 등 여전히 중동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이란안에 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자세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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