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협약 ‘21세기 버전’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이 12일로 체결 60주년을 맞는다. 유엔 가입국보다 2개가 많은 194개국이 비준한 이 협약은 전쟁과 유혈 충돌 상황에도 적군과 전쟁포로, 민간인의 인권을 존중하도록 해 ‘전장의 바이블’ ‘분쟁의 법전’ 역할을 했다. 협약 체결 이듬해 발발한 한국전쟁은 이 협약이 적용된 최초의 전면전이 됐다. 제네바 협약은 국제 분쟁의 안전판 역할도 했다. 인종 학살 등 비인도적 행위자를 전범으로 규정해 국제 법정에서 재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르완다와 유고의 인종 학살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가 설립돼 책임자들을 처벌하기도 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전쟁의 양상이 내전과 대테러전으로 바뀌면서 제네바 협약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야코프 겔렐베르거 국제적십자사(ICRC) 총재는 6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대부분의 분쟁은 국가 간이 아니라 국가 내부에서 발생하는 만큼 제네바 협약 등 국제 협약을 시대에 맞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네바 협약은 9·11 테러 이후 실효성을 의심받아 왔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전쟁하면서 체포한 테러 혐의자에 대해 ‘전쟁포로’ 자격을 주지 않았다. 이들을 제네바 협약에 따른 ‘전쟁포로’로 간주할 경우 신문에 제한이 있어 대테러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적 전투원(Enemy Combatant)’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아프간에서 체포된 테러 혐의자들을 재판 없이 구금하는 등 인권을 제한했다. 이들 중 일부는 미 해군이 운영하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돼 물고문에 버금가는 워터보딩(waterboarding)과 잠 안 재우기 등 가혹한 신문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내년 1월까지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공화당 등의 반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 인권 변호사인 클리브 스미스는 “오바마의 개혁 약속에도 관타나모 수용소의 테러 혐의자들은 변호사 접견권을 거부당하는 등 제네바 협약에 따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네바 협약 60주년을 맞아 스위스 정부와 국제적십자사는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11월 9~10일 제네바에서는 정부·전문가 국제회의가 열려 협약의 개정 필요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재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