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세무공무원도 명퇴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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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세무공무원들 사이에도 명퇴바람이 불고 있다.

안정된 신분에 막강한 직업적 권한을 배경으로 자부심까지 가졌던 세무공무원들로선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올 들어 11월 현재 명퇴를 신청한 국세청 직원은 모두 6백90명. 지난 한햇동안 명퇴한 76명의 9배나 되는 숫자다.

특히 계장이나 직원중 최고참인 차석들이 많다는 게 국세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오랜 경력으로 현장경험이 많은 '숙달된 직원들' 이 무더기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명퇴바람이 부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내년부터 명퇴수당이 없어진다는 소문이 갈수록 기정사실화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분야에서 감봉.감원이 확산되면서 실제로 정부는 공무원들의 명퇴수당 지급을 중단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명퇴수당이 없어지기 전에 현재 1인당 평균 3천만원에 이르는 명퇴수당을 받아 나가자는 집단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세풍 (稅風) 사건 이후 중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사정한파가 그칠 줄 모르는 것도 국세청 직원의 명퇴바람을 거세게 하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7월 자체 사정을 통해 공직추방 1백5명을 포함해 2백70명을 징계조치했다.

이들은 당연히 명퇴자격에서 제외됐고 세무사 개업도 제한됐다.

직급별로 보더라도 5, 6급이 47명이었고 7급 이하가 2백7명에 달했다.

역시 현장접촉이 잦은 중하위직에 사정한파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달말 국세청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세무비리 백태에서도 6급 이하 직원들의 적발건수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국세청 중하위직들은 '좋은 시절' 이 다 갔다고 느끼는 것이다.

외부의 시각보다 내부의 감시가 더욱 무서워진 것이다.

이제는 세무조사도 함부로 나갈 수 없게 됐다.

요즘엔 납세자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거나 납세자를 부당하게 협박해 세무업무를 임의대로 처리한 직원은 물론이고 한발 더 나아가 개혁에 역행하거나 무능력한 직원까지 사정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이처럼 사정한파와 세무공무원으로서의 인센티브 감퇴가 동시에 몰아닥치면서 중하위직들이 겪는 불안감은 훨씬 높아졌다.

여기에 운영을 잘못해 몇년 안에 바닥날 수 있다는 공무원연금에 대한 불안도 이들의 퇴직 러시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세무사 자격을 갖춘 직원들은 더욱 가벼운(?)마음으로 사표를 던지고 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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