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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더욱 중요해진 금융정책 당국의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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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논란이 컸던 법안이다. 여야 간에, 전문가 사이에 견해차가 심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크게 세 가지다. 금산분리 완화, 비은행 금융지주회사의 산업자회사 지배 허용, 금융지주회사의 대형화, 겸업화 촉진을 위한 제도 개선이 그것이다.

이 법안이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법안의 내용과 이번 세계 금융위기가 던져 주고 있는 시사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위기를 통해 각국에서 부각된 금융 부문의 주요 문제 중 하나는 그동안 진행돼온 ‘상호연결성(interconnectedness)’의 확대다. 금융그룹화, 파생상품 개발 등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금융기관 간 대차대조표가 밀접하게 얽히게 되다 보니 건전성 문제가 발생한 개별 금융기관을 분리해 처리하기가 과거보다 훨씬 어렵게 됐다. 또 대형화·겸업화의 진행으로 특정기관의 부실이 곧바로 전체 금융 시스템 위기로 연결되게 됐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조치가 미국 내의 전 금융 부문, 전 세계 금융시장의 위기로 순식간에 파급된 것은 이를 보여주는 예다. 그 결과 투자와 경영에 실패한 금융기관을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위험한 투자와 높은 부채비율을 바탕으로 고수익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경제 전체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게 되는 기업을, 그것이 금융기업이든 산업기업이든 퇴출시키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건전한 경제라고 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를 깨고 나서 우리나라 은행과 기업의 경영은 달라졌고 훨씬 튼튼해졌다.

결국 이번 위기가 주는 주요 시사점 중 하나는 금융 부문에서 시스템 위기의 가능성을 높이는 산업구조 도입에 신중을 기하라는 것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대형화가 필요하고 또한 겸업화를 통해 연계 영업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정책이 고려해야 할 측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산업구조의 장기적 경제비용에 대해서도 깊이 점검해 볼 것을 이번 위기는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각국에서는 이미 이 문제와 전반적인 규제개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기관의 자산 운용과 상품에 대한 규제가 과도했던 면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규제 완화는 오히려 확대해 나가되 장기적인 산업구조의 방향에 대해서는 신중한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 법 통과로 금융 부문 내에서의 상호연결성뿐 아니라 이에 더해 금융 부문과 산업 부문의 상호연결성이 확대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이는 금융위기를 맞게 됐을 때(금융위기는 반드시 반복된다!)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정책 선택의 폭을 스스로 제한하고 국민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훨씬 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산업자본의 소유 지배를 법적으로 제한하지 않더라도 주요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관행적 또는 암묵적으로 이를 허용하지 않는 전통을 가진 나라가 많다. 이번 개정안은 장점도 많이 가지고 있다. 재벌의 지배구조를 보다 투명하게 유도할 수 있고 또한 사모펀드와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금융기관 소유에 참여할 수 있는 폭을 넓혀 은행 민영화의 현실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법안의 장점을 살리면서 산업과 금융의, 금융 부문 내에서의 상호연결성 확대를 견제하고 장기적으로 금융 부문과 국가 경제의 안정성을 도모하는 것은 이제 온전히 정부의 인허가 판단과 정책적 비전의 몫으로 넘어가게 됐다. 법의 규제 뒤로 숨을 수 없게 된 정부는 그만큼 이에 대한 분명하고 일관된 정책적 기조와 비전을 준비해 이를 시장과 교감해 나가야 한다. 용기가 필요하고 권위가 뒷받침돼야 할 일이다.

이번 위기가 주는 또 다른 교훈은 ‘거시적 감독(macro-prudential regulation)’의 중요성이다. 개별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이 아무리 잘 이뤄지더라도 시장에서 거품 형성과 붕괴가 일어날 경우 금융위기를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시적 감독과 함께 금리 수준의 적절성, 과잉유동성 여부, 거품을 부추기는 여타 정책적 요인은 없는지 등에 대한 통괄적·거시적 감독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금융 정책 당국 간 긴밀한 협의와 공조가 이뤄져야 할 뿐 아니라 이들이 정치적 고려나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정책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래저래 금융 정책 당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국제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