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겐뻬이 고쬬'와 '오니 게이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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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인터넷 중앙일보는 지난 5일 중앙일보에 게재돼 반향을 일으켰던 이문열씨의 칼럼을 이번 친일공방과 관련해 다시 꺼낸다. (편집자)

어렸을 적에 어른들이 가장 치를 떨며 회상하던 친일(親日) 부류 가운데 '겐뻬이 고쬬'와 '오니 게이부'가 있었다. 겐뻬이 고쬬는 헌병 오장(伍長)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고, 오니 게이부는 귀신 같은(잡는) 경부(警部)라는 뜻의 일본말이다. 곧 민간인 정치사찰까지 겸하던 일본 헌병 하사관과 사상범 취조에 유능한 일본 경찰 하급간부가 그들이다.

*** 일제 때 악명 날린 하수인들

겐뻬이 고쬬는 해방 뒤의 혼란스러운 건군(建軍) 과정을 거쳐 6.25를 겪는 동안 그 무서운 생존 능력을 우리에게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육군에 투신하여 중장으로 특무대장까지 지낸 김창룡이 바로 겐뻬이 고쬬 출신이었고, 역시 육군 야전군 연대장이 되어 공비토벌을 맡으면서 '백두산 호랑이'란 별명까지 얻었던 김종원 또한 겐뻬이 고쬬 출신이었다. 김창룡은 허태영 대령에게 암살당할 때까지 이승만을 위해 무더기로 사상범을 만들어 내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고, 김종원은 거창(居昌) 양민학살의 책임자로 군복을 벗었으나 뒷날 치안국장까지 지냈다.

오니 게이부는 원래 민족시인 이육사(李陸史)를 체포하는 데 놀라운 재주를 보인 경부보(輔) 최석현이 얻은 별명이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수완 좋은 경부를 가리키는 일반 호칭이 된 듯한데, 해방 뒤 오니 게이부들이 보여준 저력도 만만찮다. 일제 때 경부로 악명 높았던 노덕술은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이 되어 반민특위(反民特委)를 와해시키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고, 또 다른 경부 출신 이익흥은 이승만 대통령의 총애를 입어 나중에 내무부 장관까지 지냈다.

요즘 여야가 연일 주고받는 공방 중 친일파 청산과 관계된 논의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여당이 낸 개정 법안에 일본군 소위(少尉)를 조사대상으로 집어넣은 게 특히 말썽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하여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사대상에 끌어다 넣음으로써 박근혜 대표를 흠집내려 한다는 야당의 의심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잘못된 게 있다면 일본군 소위를 조사 대상에 넣은 것이 아니라, 조사대상 선정에서 일본군에 복무한 경력과 일제하(日帝下)의 다른 분야에 종사한 경력 사이에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위 이상이 친일파로서의 조사대상이 된다면 그보다 훨씬 죄질 나쁜 친일의 혐의가 가는 겐뻬이 고쬬와 오니 게이부도 마땅히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여당이 내는 개정안에서 군대만 중좌에서 소위로 계급을 내리고, 경찰은 경시(警視)에 그대로 묶어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겐뻬이 고쬬는 이미 통과된 법안 원안에도 언급이 없었다.

일본 헌병 오장이나 귀신 같은 일본 경찰 경부가 조사대상에 들어가면 개정안을 발의하는 여당 쪽에 무슨 가슴 뜨끔할 일이라도 있는가. 나라야 죽이 끓건 밥이 되건, 경제야 거덜이 나건 쪽박을 차게 되건 무언가 여당 쪽에 정치적 이익이 되니 의회 장악 기념사업 삼아 떠벌인 과거청산 굿판이다. 이제 와서 목에 핏대 세우며 하자고 우길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팔 걷어붙이고 말리고 싶은 일도 아니나, 청산하려면 뭔가 좀 말이 되게 제대로 청산하자.

이왕에 친일 문제가 나왔으니 덧붙여 말하자면, 앞으로는 그 맞은편에 있는 독립지사에 관한 문제에도 좀더 신중하고 형평성 있는 태도를 가졌으면 한다. 좌파 항일(抗日)도 항일이니, 항일한 공산주의자도 독립지사로 치는 것은 좋다. 마적질 하고 쫓기다 할 수 없이 일본 군경(軍警)과 싸우게 된 것도 항일이라 치자. 그러나 그 논리를 더욱 확대하여 '비민주적' 정권에 '저항하여' 전향하지 않았다 해서 간첩을 민주투사로 만들지는 말자.

*** 민주투사 선정에도 신중해야

독립지사 후손 시비도 그렇다. 독립지사 후손을 자처하려면 적어도 직계(直系)에다 같은 호적 안에 있는 자손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출가한 종손녀(從孫女)까지 독립지사 후손임을 무슨 훈장처럼 내세우고 설쳐대는 것은 아무리 이 나라에 독립지사 후손이 귀하다 해도 보기에 좀 민망스럽다. 그것도 조상으로 내세우는 이가 재가(再嫁)한 증조모를 따라 가서 남의 가문에 입적되는 바람에 본관까지 달라진 종조부(從祖父)임에랴.

이문열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