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강국으로 일어서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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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호 35면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키워 한국의 미래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지 10년이 다 돼간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정보기술(IT)·바이오기술(BT)·나노기술(NT)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노무현 정부에선 ‘신성장 동력산업’이라 추켜올렸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차세대 먹거리 사업’이라며 고위 당국자 가운데 입에 올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 실제 정부는 바이오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자금을 꾸준히 늘려 왔다. 지난해 바이오 연구개발 예산이 1조6569억원이나 됐다. 물론 이 예산은 아주 다양한 바이오산업 전체의 연구개발에 들어간 돈이다. 순수한 바이오 신약개발연구비는 훨씬 적은 600억~700억원 규모에 불과하다.

문제는 국민의 높은 기대와 정부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바이오산업의 연구 결과물이 빈약하고 초라하다는 사실이다. 관계당국은 신약이 14개를 넘어섰고 124건의 특허, 1000여 건의 논문 성과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게 별로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필자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점은 전문역량의 부족이다. 국민이 준 소중한 예산을 연구개발비로 투입할 만한 기술수준인지를 평가할 인력구성과 체계가 취약하다. 보건복지부와 교육기술부·지식경제부가 주관하고 있는 바이오 연구개발사업 선정목록을 보면 애초부터 원천특허 취득이 불가능한 사업이거나 이미 바이오연구에 실패한 기술, 또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수십 년간 연구개발해 온 사업, 상품화와 거리가 먼 이론 연구 등에 대부분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처음부터 결과가 뻔할 수밖에 없다.

둘째, 관리체계의 불안정이다. 바이오산업의 기술개발과정을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평가해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 관리체계가 불안정하다. 바이오연구개발의 특성상 10여 년의 끊임없는 노력, 임상기관 및 허가기관과의 유기적 협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각 기관들은 잦은 보직이동으로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문제점 파악조차 못한 채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에서 이론연구에 주력하는 교수들과 어떻게 해서든 정부예산을 지원받으려는 기업들의 한계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 중점 관리를 해도 과제수행이 쉽지 않다. 이런 판에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거나 1~2년간 해당 분야에 근무하는 관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형식적인 투명성 확보와 캠퍼스의 실적 쌓기용 논문목록 작성이 되고 만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허가한 난치병 중 난치병인 루게릭 치료제 유스솔루션은 보건산업진흥원의 연구개발 과제 응모과정에서 연구발표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계적인 제약사인 노바티스는 국내 바이오기술 발굴사업에서 한국 바이오 3대 기술로 선정했다. 이는 한편의 코미디가 아니라 한국바이오산업의 갑갑한 현실을 증거하는 것과 다름없다.

셋째, 각종 심사지침과 허가기준의 신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바이오기술에 대해 각국은 신약후보 물질에 대한 정밀한 평가과정, 인체 안전성과 함께 약효가 정말 유효한지를 따지는 임상과정, 약품 허가과정 등을 단계별로 운영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의 각종 허가기준과 임상지침에 대한 신뢰성은 아주 높은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이렇게 된 까닭은 그동안 한국의 제약산업이 거의 전부 복제약 생산을 중심으로 신약개발에 소홀히 해왔기 때문이다. 관계당국도 자연스레 선진국에서 승인한 약품이니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믿고, 복제약이니까 정확한 성분분석이나 약효안전성 등을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미 FDA가 ‘증상개선 효과도 없고 임상에서 유의미한 통계도 나오지 않았지만 희귀질환이므로 허가한다’는 점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음에도 한국은 일반약으로 허가한 경우까지 있었다.

신약 심사·허가과정의 낡은 관행과 서비스 부재, 신속심사제도의 개혁이 시급하다. 이렇게 바이오 연구개발과제를 심사할 전문인력의 확보, 전문 관료들의 장기적이고 철저한 관리체계 수립, 임상 및 신약 심사·허가과정의 개혁이 시급히 이뤄지지 않는 한 바이오 강국론은 말만 요란한 부실 프로젝트가 될 공산이 크다.

바이오산업은 확실히 한국의 특성에도 맞을 뿐더러 자원과 국토가 빈약한 한국이 차세대 먹을거리 사업으로 집중 육성하면 충분한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황금어장이다. 그러나 제기된 문제점을 신속하게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보다 8배나 많은 연구예산(12조원)을 투입하고 있는 중국에 추월당하고, 미·유럽의 선진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낀 나라’가 돼 바이오강국의 꿈은 요원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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