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문제는 풀릴 듯 … 북핵까지 풀릴지는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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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左)이 4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 끝) 일행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조선중앙 TV 촬영]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전격 방북 및 클린턴-김정일 회동으로 늪에 빠졌던 북·미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북·미 양측 간엔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몇 가지 난제가 버티고 있지만 해결의 단초가 생긴 것이다. 우선 과제는 북한에 억류된 2명의 미국 여기자 석방 문제다. 다음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양측 간 대결·압박 구도를 북한 핵 해결을 위한 대화·협상 구도로 전환시킬 필요도 있다. 장기적으론 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한을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내야 한다. 이 모든 숙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빌 클린턴 대통령의 대담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의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에 대해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4일 “(두 사람이) 공동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해 진지한 담화를 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자 석방=미 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엔 문제 해결을 위해 강경하게 나왔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4월 22일 하원 청문회에서 “북한 정권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굴복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은 다음 날 “두 기자를 재판에 회부하겠다”며 강경하게 맞섰다.

억류 사태가 두 달을 넘기자 미국 내에선 “과거 정부에 비해 국민 보호에 소홀하다”는 비난 여론이 커졌다. 결국 미 국무부는 6월 초 “여기자들 석방과 북핵 문제는 별개”라며 개별 협상이 가능함을 시사했다. 북한이 재판을 열어 두 여기자에게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하자 유화 제스처는 더욱 본격화됐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달 두 기자의 북한 실정법 위반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워싱턴 정가에 “북한이 빌 클린턴 혹은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을 특사로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20일 클린턴 장관이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여기자 석방 문제가 매우 희망적”이라고 밝힌 지 2주 만에, 남편 빌 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 핵과 관계 정상화=이런 와중에 북한은 4월 초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선 의장비난성명이 채택됐고, 북·미 관계는 대결 국면으로 치달았다. 유엔 성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이후 2년7개월여 만이다. 주요국들이 일제히 핵실험 반대성명을 내놨고, 유엔은 6월 12일 안보리 제재 결의를 발표했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를 기반으로 ▶무기 금수 ▶화물 검색 ▶금융 제재와 관련한 강력한 제재 조항이 추가됐다. 미 재무부는 금융 제재에 나섰고,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어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공으로 버텼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를 하면 ‘포괄적 패키지’를 통해 북·미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해제는 물론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해 풀어야 할 현안을 두루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현안 털어낼까=클린턴-김정일 회동이 신속하게 이뤄짐에 따라 여기자들의 석방은 조기에 이뤄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5일 중 클린턴 전 대통령과 여기자 일행이 귀국길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다 이날 회동에선 북핵 문제를 비롯한 북·미 양자 간 현안이 포괄적으로 다뤄져 추이가 주목된다.

북한 입장에선 2차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강한 제재와 압박에서 벗어나고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대외적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미국에 줄 ‘선물’이 필요한 상황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포괄적 패키지로 대화 의지를 보이는 만큼 북한은 클린턴의 방북을 계기로 북·미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최상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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