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엄친딸 송명은의 수퍼모델 도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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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스페인어는 능통하고 웬만한 중국어도 OK. 여기에 일본어·라틴어·그리스어·불어까지 배웠다.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현재 이화여대에 재학중인 그녀는 하얀 피부와 가녀린 몸매가 돋보인다. 본인은 극구부인 하지만 누가 봐도 '엄친딸'인 그녀가 최근 실패를 경험했다.

2009 아시아·태평양 수퍼모델 최종예선이 열린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 체형복 아래로 늘씬한 다리를 자랑하는 50명의 후보들이 순서대로 면접을 치르고 있었다. 키 순서로 번호가 정해지는 만큼 뒷번호로 갈수록 후보들의 키는 작아졌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50번 송명은(22·이대 국제학부)씨의 순서.

-내년 대회에 작은 키를 1번으로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이번에 되면 좋겠지만 만약에 내년에 그렇게 규칙이 바뀐다면 내년에 또 지원하겠습니다."

이말을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명은씨 머릿속에는 '망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심사위원의 이야기가 내년에 지원하라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올해 대회에서 너는 키가 작으니까 안 된다, 그렇게 느꼈어요. 예의상 한 번 질문을 하신 게 아닐까. "

예상대로 그녀는 최종예선에서 탈락했다. 패인을 묻는 질문에 바로 '키'라고 답했다. 지금까지 자신의 키가 작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이번 대회 기간 키는 그녀의 가장 큰 콤플렉스였다. 166.9cm. 20대 여성의 평균키를 웃도는 수치지만 명은씨는 1차 예선 합격자 50명 가운데 가장 끝 번호인 50번을 배정 받았다. 1번과는 무려 20cm 가까이 차이가 났다. 이 때문에 교육 기간에 평소 신지 않던 9cm '킬힐'을 신기도 했다.

명은씨는 신림동 고시촌에 박혀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고시생'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그려온 외교관이 되기 위해 편한 복장에 쌩얼, 안경을 낀채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만 했다.
그런 그녀가 고시촌과는 너무나 다른 '런웨이'를 향해 발을 내디딘 이유를 물었다.

"TV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제2회 아시아·태평양 수퍼모델 대회'를 보게 됐어요. 김나나 씨를 비롯해 거기 나오는 분들이 매우 당당하고 밝아 보였어요. 그걸 보면서 저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홈페이지에 가서 지원자격을 봤더니 키가 160cm만 넘으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도전했죠."

물론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서류에 첨부해야 할 프로필 사진부터 문제였다. 어디서,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조차 막막했다. 그때 생각난 사람이 남동생.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남동생에게 갔지만 남동생은 따끔한 충고로 누나를 돌려세웠다.

"어설프게 할 거면 시작도 하지마, 이왕 할거면 확실히 해야지. 전문 사진작가한테 가서 찍어달라고 해."

곧바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고 다음날 한 스튜디오를 찾아 프로필 사진 촬영을 마쳤다. 잠깐 희망을 품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진 그녀에게 사진 작가의 말 한마디는 큰 힘이 되었다.

"내가 촬영한 사람 중에 떨어진 사람이 없어. 명은씨도 꼭 될거야. 얼굴만 보면 미스코리아감인데."

작가의 예상대로 명은씨는 서류심사를 통과했고 곧바로 1차 예선을 준비했다. 하지만 1차 예선에는 모델의 기본인 '워킹'이 포함돼 있었다. 워킹의 기본조차 모르는 그녀는 다시 인터넷 검색을 했다. '모델처럼 걷기'라는 제목의 미국 UCC를 찾아낸 명은씨는 좁은 방안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걷는 연습을 했다. 지원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기에 내놓고 연습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론 수천번을 걸었다.

1차 예선 당일, 다른 후보들의 모습에 명은씨는 할말을 잃었다. 키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후보들은 적어도 피팅 모델 또는 잡지 촬영 정도의 경험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자기 최면.

"나는 초짜가 아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라고 생각하고 진짜 당당하게 걸었어요."

그렇게 최종 예선 50명에 들었고 그제서야 부모님께 사실을 말씀 드렸다. 부모님의 응원과 함께 다음날 가입교식을 시작으로 3주간의 모델 교육이 시작됐다. 아침에는 헬스, 오후에는 워킹 수업이 이어졌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공부를 했다. 자세를 바로잡는 일이 이토록 힘든 일인지 몰랐지만 새로운 도전이 즐겁게 느껴졌다.

"다른 친구들이 쉬면서 스트레칭하고 수다 떠는 동안 저는 혼자서라도 계속 트레이너분이 가르쳐주신 동작들을 연습했어요. 집에서도 식단을 짜서 고단백질 위주로 음식을 먹었고요."

이런 노력에도 그녀는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떨어진 것을 알았을 때는 허탈했죠. 당연히 아쉽고. 하지만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다른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만족해요."

다시 기회가 있다면 그녀는 또 도전할 생각이다.

"제가 지금 20대 초반인데 지금이 인생을 즐길 때잖아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외교관을 꿈꿔왔는데 모델도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공부와 모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힘들겠지만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대 엄친딸 '송명은'의 수퍼모델 도전기와 수퍼모델 최종예선 현장은 아래 동영상 또는 조인스TV에서 만날 수 있다.

글 = 뉴스방송팀 송정 작가
영상 = 뉴스방송팀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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