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동산불 8개월째 지구촌 생태계 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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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러시아 극동지역을 휩쓸고 있는 대규모 산불이 지구촌 전체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대재앙으로 확산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올초부터 계속되고 있는 이 산불은 이미 시베리아 침엽수림의 타이거지대와 사할린섬을 중심으로 남한 (9만8천㎢) 크기에 맞먹는 광활한 지역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유엔전문가팀의 블라디미르 사호로프 단장은 10일 이 지역을 시찰한 뒤 "세계적인 생태계 재앙으로 분류될 만큼 엄청난 규모의 산불이다.

러시아의 인접국 뿐만 아니라 북반구 대부분 지역의 생태환경에 영향을 미칠 것" 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산불은 중국과 국경을 접한 하바로프스크 지역 일대 1만5천㎢를 전소시켰으며 간헐적인 눈과 비에도 불구하고 4천㎢에서 여전히 불길의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 극동지역 주민의 주 수입원인 수백만t의 삼림이 사라졌으며 시베리아 호랑이.흑곰.붉은여우 등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도 위협받고 있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뻗어 있는 시호테 - 알린 산맥 일대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최대 서식지로서 지구상에 남아 있는 4백25~4백75마리의 시베리아 호랑이들이 멸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

사할린섬 (7만4천㎢) 의 경우 3분의2 지역이 폐허로 변했으며 3명의 사망자와 1천2백만명의 이재민을 냈다고 이타르 - 타스 통신은 전했다.

일부 마을에서는 항공구조대조차 접근할 수 없을 만큼 심한 불길과 연기가 여전히 치솟고 있으며 산소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산소센터' 를 긴급 개설했다.

사할린 현지 공항은 화재로 인한 짙은 연무 (煙霧) 때문에 8월 이후 정기항공편의 운항을 중단했으며, 불이 산림의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물을 끌어오기 힘들어 진화시도도 실패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NTV방송은 "화재가 사할린과 콤소몰스크를 잇는 석유와 가스파이프라인의 근처까지 접근하고 있다" 며 대형 참사의 가능성을 걱정했다.

이번 산불은 엘니뇨 영향으로 지난 겨울 눈이 거의 오지 않은데다 올 2월부터는 유례없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산림이 메말라 일어난 것으로 기상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 산불은 러시아 정부가 진화작업을 위한 재원이 없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어 올 겨울철 많은 눈이 내릴 때까지는 뾰족한 진화방법이 사실상 없는 상태다.

이에 따라 국제 환경보호단체 등은 생태계에 미칠 파장을 경고하며 국제적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는 7일 사할린지역의 진화를 위해 5백만엔 (약 5천만원) 어치의 장비를 지원했고, 세계자연보호기금 (WWF) 과 국제자연보존연맹 (IUCN) 도 2만달러 (약 2천8백만원) 를 보냈으나 산불진화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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