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자산, 오를 것 보다는 덜 떨어질 것 골라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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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26면

문제 하나. 다음 힌트들이 공통으로 설명하는 상품은?
① 시장 규모가 2003년 3조3000억원에서 2007년 25조6000억원으로 4년 새 8배 성장.
② 2008년 회사의 부도로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 못하는 사태 발생.
③ 2009년 주가조작 의혹으로 투자자 소송이 제기돼 금융감독원이 해당 증권사를 제재.

하반기 최고 투자처로 꼽히는 ELS, 투자 전략은

힌트 ①에는 주식형 펀드를 떠올린 이들이 많겠다.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돌파하는 등 강세를 보이면서 주식형 펀드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맞다. 그러나 힌트 ②를 보면 정답이 아니다. 2003년 이후 부도난 운용사가 없다. 힌트 ③으로 미뤄 증권사가 파는 랩어카운트 상품일 듯싶지만 ①, ②에 해당하지 않는다.

정답은‘주가연계증권(ELS·Equi-ty Linked Securities)’이다. ELS는 최근 장 막판 주가 급락으로 인한 손실 문제로 투자자와 증권사 간에 분쟁이 벌어지면서 상품 신뢰도가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못 믿을 것’이니 외면해 버리면 그만일 듯싶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하반기 최고의 투자 상품으로 꼽는 게 ELS다. 금리는 여전히 낮지만 그렇다고 주식시장의 지속적인 상승을 점치기도 힘든 상황이므로 채권보다 수익률이 높고 주식보다는 안전한 ELS가 매력적이라는 얘기다. 다만 뜻하지 않은 손실을 보지 않으려면 특성을 철저히 파악해 투자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회색형’ 투자자에게 적당
ELS는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의 변동에 따라 투자 수익이 결정되는 상품이다. 채권과 주식의 옵션을 결합해 만들었다. 특정 자산(기초자산)의 가격이 미리 약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기대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파생상품의 성격이 있지만, 일부 리스크를 통제하고 조건에 따라 수익을 받는다는 측면에서는 채권의 성격도 있다. 리스크만 부담하면 예금 금리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주식 투자는 위험하다고 외면하고 채권 투자는 수익이 만족스럽지 않아 꺼리는 ‘회색형’ 투자자에게 딱 맞는 상품이다. 삼성증권 홍성용 컨설팅지원팀장은 “급락할 가능성은 작을 것 같지만 단기간에 너무 많이 올라 추가 상승이 어렵다고 보는 투자자, 증시가 오를 것 같지만 위험은 감수하기 싫은 투자자에게 적합한 상품이 ELS”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코스피 지수가 1550선을 돌파하는 등 증시는 올 저점 대비 60% 가까이 올랐다. 급등에 따른 조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기업 실적이 계속 좋게 나오고 있어 급락까지는 점치기 어렵다. 이런 시점에 가장 적합한 상품이 ELS라는 얘기다.
 
원금 손실 가능성 감안해야
그렇다고 ELS가 만능은 아니다. 과거 투자자들은 ELS가 무조건 안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지난해 증시 급락으로 손실을 보는 ELS가 속출하면서 그 믿음은 깨졌다. ELS에도 위험 요소가 분명히 있다.

최근 문제가 된 것은 ELS 취급 증권사의 주가조작 혐의다. ELS의 수익률이 결정되는 조기상환이나 만기 평가일에 ELS 운용을 맡은 증권사가 기초자산이 되는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해 주가를 일부러 떨어뜨렸다는 의혹이다. 투자자들은 손실을 봤다며 증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업계는 조기상환일이나 만기일에 상환 가능성이 크다면 투자자에게 현금을 돌려주기 위해 그동안 보유한 주식을 모두 처분해야 하는 상품 구조상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 당국은 하루가 아니라 평가일 3~5일 전 평균 종가로 계산하는 방법, 현금이 아니라 주식 현물을 투자자들에 돌려주는 방법 등 대안을 강구 중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ELS를 운용하는 믿을 만한 증권사를 고르는 것이 현명한 자구책일 것이다.

증권사의 재무 건전성도 따져봐야 한다. ELS는 예금자 보호를 받을 수 없다. 투자에 따른 수익을 지급할 의무는 발행 증권사에 있다. 만약 증권사가 파산하면 최악의 경우 투자자는 한 푼도 받지 못할 수 있다. 지난해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이 증권사가 발행한 ELS를 편입한 주가연계펀드(ELF) 투자자들이 뜻하지 않은 손실을 봤다. 그러나 리먼브러더스의 ELS를 그대로 사다가 국내 증권사가 발행해 판매한 경우 투자자들은 전혀 손실을 보지 않았다. ELS는 발행 증권사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뭐니 뭐니 해도 ELS의 가장 큰 위험은 원금 손실 리스크다. 물론 원금을 보장해 주는 상품은 예외다. ELS는 대부분 판매 당시보다 주가가 40~50%, 지수가 30% 정도 떨어지지만 않으면 원금을 보장해 준다. 대다수 투자자가 ‘설마 그런 일이…’라며 안심하고 투자했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았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시가 폭락하면서 원금을 까먹는 ELS가 속출했다. 증시 전망이나 주가 흐름을 예상하면서 만약의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이게 싫다면 원금보장형 ELS에 투자할 수도 있다. 다만 안전한 만큼 기대 수익률이 낮다. 증시 급락 가능성이 작다고 확신한다면 원금을 보장해 주고 수익을 적게 주는 상품보다는 원금 비보장형이더라도 수익을 더 주는 상품을 고르는 편이 낫다.

갑자기 돈이 필요해 중도 상환을 하게 된다면 원금손실을 볼 수 있다. 발행 후 6개월까지는 평가금액의 90%, 6개월 이후에는 95% 이상 등으로 돌려주는 돈이 제한된다. 갑자기 현금을 내주게 되면 ELS 운용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또 아무 때나 환매한다고 현찰을 내주지도 않는다. 증권사에 따라 매주 월·수·금요일에만 중도 환매가 가능한 경우가 있다. 약관을 꼼꼼히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PER보다 PBR 고려해 선택”
ELS에 투자하려면 꼭 점검할 게 몇 가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기초자산이다. 기초자산의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원금 보장 여부와 수익률이 결정된다. 기초자산을 전망할 때 고려할 점은 얼마나 오를까가 아니라 얼마나 덜 떨어질까다. 이 부분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투자 의견’과 차이 난다. 애널리스트들은 앞으로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큰 종목에 대해 ‘매수’ 의견을 낸다. 만약 기업의 매출이나 이익에 별 변화가 없어 주가가 정체할 것 같다면 이런 주식은 관심 대상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ELS 투자자들은 반대다. 오히려 가격이 별 변화 없이 움직인다면 조기상환 기회나 기대한 수익률을 얻을 확률이 높아진다. 곧 상승 가능성보다는 변동성이 얼마나 작을까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부증권 박진수 연구원은 “기초자산의 가격이 급등하는 ELS보다는 일정 수준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ELS에 투자해야 한다”며 “대형 우량 대표주나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가 좋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홍 팀장은 “얼마나 덜 떨어질까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주가수익비율(PER)보다는 주가순자산배율(PBR)을 참고해 기초자산을 고르라”고 조언했다.

상품 구조도 살펴봐야 한다. 원금 보장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조기상환 조건은 어떤지를 따져야 한다. 특히 최근 ELS 시장이 위축되면서 원금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한 ‘슈퍼 스텝다운형’ 상품도 나왔다. 투자 기간 중 건드리면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는 하한선을 아예 없앴다. 일시적 급락을 걱정할 필요 없이 만기 때 주가만 생각하면 된다는 얘기다. 또 두 개의 기초자산 중 더 좋은 실적을 낸 자산에 따라 수익률을 결정하는 상품도 등장했다. 과거엔 나쁜 실적을 낸 자산을 기준으로 했다. 다만 안전성을 높이면 그만큼 수익률이 낮아지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우리투자증권 에퀴티파생팀 변종기 차장은 “만기는 3년 정도로 여러 번 조기상환 기회를 갖는 상품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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