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풍 고문주장' 진상 밝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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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북한측 관계자와 접촉, 판문점 총격사건을 요청했다는 이른바 '신 북풍사건' 피의자들이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법원이 변호인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한 2명에 대한 신체검증을 실시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고문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법정으로 번지게 됐다.

법원 심리 과정에서 피의자중 한성기 (韓成基) 씨는 안기부 조사 과정에서 여러차례 구타당해 목과 허리 통증이 심하다고 진술했고 장석중 (張錫重) 씨는 구타당한 흔적을 촬영해뒀다며 사진을 증거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張씨는 또 서울지검 1144호실에서도 구타.고문을 당했다며 법원에 이곳에 대한 증거보전신청을 제출했다.

그러나 안기부측은 두 사람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며 이들의 모든 신체 부위가 정상이라고 기재돼 있는 서울구치소 의무실의 건강진단부를 증거로 제시했다.

아울러 안기부는 이들의 주장은 허위이거나 중대한 범죄행위를 모면키 위한 자작극으로 보인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상반돼 아직 고문 여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엄청난 충격을 준 '판문점 총격 요청설' 의 진실이 규명되기도 전에 고문 주장이 등장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고문 주장도 '총격 요청설' 못지 않게 하루빨리 진상을 밝혀내 의혹과 궁금증을 해소해야 한다.

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일은 '총격 요청설' 수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는 그 자체가 범죄다.

그렇지만 고문 흔적이나 상처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 가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문제가 제기되면 검찰이 바로 수사에 나서야 한다.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소나 공공병원 등 공신력있는 전문기관.전문가의 권위있는 감정을 거쳐 명쾌하게 결론을 짓도록 해야 한다.

특히 새 정부는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인권법을 제정하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설치키로 한만큼 이런 문제에 결코 의혹의 여지를 남겨서는 안될 것이다.

수사만 하면 쉽게 판가름날 일을 가지고 여야가 감정적인 공방을 벌이는 것은 옳지 않다.

또 가혹행위는 형사법적 차원의 문제지 정치적 쟁점이 돼서도 안된다.

검찰이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해 고문 사실이 드러날 경우 관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할 것이고 허위주장이라면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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