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정치] 몸싸움 국회, 경위들의 절규 “몸싸움 강한 유도 고수 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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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유도와 태권도. 대표적인 격투기입니다. 각종 대회에서 우리나라에 메달을 안겨주는 메달박스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성적은 태권도 쪽이 낫습니다. 태권도 종주국이니까요. 2009년 대한민국 국회의 평가는 좀 다른 듯합니다.

올 초 국회 사무처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국회 경위를 뽑을 때 유도 고수를 뽑아야겠다. 태권도 고수로는 안 되겠다.” 태권도·유도·검도·합기도 고단자에게 동일한 가산점 혜택을 주는 기존 방식을 바꾸자는 얘기였습니다.

30일 이 일화를 전한 국회 관계자는 “입법전쟁 때 난무했던 폭력 앞에 경위들이 속수무책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지난해 12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서 해머가 등장한 이래 지난 22일 미디어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국회 곳곳에선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국회 소속 경위 65명 전원이 나섰지만 충돌을 해소하기엔 매우 부족했습니다. 기본적으론 여야 싸움인지라 경위들이 적극적으로 제압하기 곤란했을 겁니다. ‘공격’보단 ‘수비’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스크럼을 짜고 막아선 사람들을 하나하나 떼어 내는 게 그나마 가장 공격적인 행동일 정도로 “소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경위과 관계자)고 합니다. 화려한 발차기의 태권도 고수보다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해 제압하는 유도 고수가 아쉬웠던 까닭입니다.

‘유도 우대책’은 그러나 현실화되진 못했습니다. 채용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1월 “경위 인원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공무원 정원을 늘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결원도 없답니다.

일각에선 “하도 답답해 나온 말일 뿐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다”란 지적도 있습니다. 사실 경위들이 늘 하는 훈련이 유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문제의 본질은 애꿎은 유도·태권도까지 탓할 정도로 선을 넘은 국회 폭력입니다. 공권력인 경위들이 ‘동네북’이 되고 있으니까요. 한 경위는 입법전쟁 당시를 기억하며 “중·고생인 아이들이 매일 ‘아빠 오늘은 별일 없는 거죠’라고 물어 보고, 아내는 아침마다 ‘뒷골 당긴다’고 걱정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나마 예전이 나았다고 합니다. 의원들의 싸움만 말리면 됐으니까요. 요즘엔 보좌진까지 경위와 맞섭니다. 지나친 혈기를 드러내는 보좌진도 일부 있습니다. 경위 세 명이 입원한 일도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경위들의 연구모임인 ‘의회경호제도연구회’에서 보좌진과의 충돌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토론 중이라고 하네요.

무엇보다 경위들을 괴롭히는 건 야당의 싸늘한 시선입니다. 외통위 충돌 이후 민주당이 경위 39명을 검찰에 고발한 일이 있습니다. 한 경위는 “지시에 따른 공무 집행이었는데…. 나야 그렇다 쳐도 가족들이 ‘피의자’로 적시된 검찰 통지서를 받아 보고 놀라곤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경위란 직업에 늘 긍지를 가졌으나 민주당 당직자들이 보는 눈 때문에 배지를 달지 않는다”고 토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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