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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대기자의 투데이]갈길 먼 슈뢰더의 독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독일 사민당이 16년만에 정권에 복귀해도 헬무트 콜 총리의 기민당이 펴온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을 것이란 일반적인 전망은 기민당의 전통적인 정책의 보수성의 한계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독일의 사회적인 시장경제는 시장원리에 따른 경쟁을 경제의 기본으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인 공정성을 위해 필요한 만큼 정부 개입을 허용해 높은 복지사회를 실현해냈다.

이것이 기민당의 보수노선이 영국의 마거릿 대처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의 보수주의와 가장 확실한 차이점이다.

그러나 사민당의 독일은 경제.사회정책과 대외정책에서 새 바람을 일으킬 소지를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콜이 총선에서 패배한 중요한 원인은 그의 장기집권에 국민이 식상한 것 말고도 11%에 이른 높은 실업률에 대한 불만의 폭발이다.

사민당에 대한 지지 못지않게 기민당에 대한 반발이 표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배경은 게르하르트 슈뢰더에겐 무거운 짐이 된다.

지금 독일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높은 생산비용에 떨어진 경쟁력이다.

기업들은 정부가 각종 세금을 내리고 노동관계법을 완화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이 나라의 생산비용을 줄여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슈뢰더는 선거운동 내내 경쟁력 있는 경제와 함께 '공정한 사회' 의 실현을 약속했다.

임금이 월등히 낮은 개발도상국들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는 세계 제3위의 경제대국이 강력한 경제와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는 두마리 토끼를 어떻게 쫓을 것인지 방법의 제시가 없다.

독일 국민은 일단 변화를 선택했다.

콜은 탁월한 통일외교로 독일 통일을 실현하고, 수도의 베를린 이전에 착수하고, 유럽 단일통화 도입의 준비를 끝낸 비스마르크 이래의 '위대한 총리' 다.

그런 그가 퇴출당한 것은 신세대 지도자에 의한 변혁 없이는 통일로 성취한 유럽 최강의 지위를 21세기까지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 같다.

콜의 경우와 달리 슈뢰더는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 통일외교의 빚을 지고 있지 않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독일통일에 동의한 것은 소련에 대한 콜정권의 오랜 경제지원과 협력이 쌓인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슈뢰더는 콜의 옐친 경사 (傾斜) 를 비판한다.

그는 또 독일이 영국보다 프랑스와의 유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데도 불만이다.

슈뢰더의 승리와 사민당의 집권으로 영국 토니 블레어총리의 성가가 오르고 있다.

그가 주창하는 제3의 노선을 중심으로 런던 - 파리 - 베를린을 잇는 사회민주주의의 추축 (樞軸) 이 형성될 전망이 점쳐지기도 한다.

블레어와 의기투합해 프랑스를 특별대우하던 기민당 노선이 수정될지도 모른다는 프랑스의 경계를 달래는 것이 슈뢰더의 중요 과제중 하나다.

지난 3년새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뒤를 이어 사회민주주의로 복귀한 것은 시장일변도의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의 결과로 해석된다.

슈뢰더가 이 점을 어느 정도 의식하고 정책에 반영할 것인가에 따라 유럽 전체의 사회.경제적 풍토가 영향받을 것 같다.

그렇게 유럽은 하나가 됐다.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콜이 비우고 간 자리는 참으로 크다.

콜이 없었으면 독일 통일과 유럽 단일통화의 실현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콜은 유럽통합에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싫든 좋든 유럽의 슈퍼파워가 돼버린 독일. 그럴수록 슈뢰더가 맞는 도전은 만만치 않다.

지금 녹색당과의 연정 (聯政) 을 만들면 녹색당의 반기업적인 노선이 사회비용을 줄여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정책에 걸림돌이 된다.

기민당과의 대연정을 택하면 사회적인 공정성에 관한 공약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유럽은 집단적인 슈퍼파워로 등장하고 있다.

그 선두가 독일이다.

독일의 위상은 유럽을 넘어섰다.

그래서 독일의 경쟁력과 정치.사회적 안정의 회복을 세계가 바라는 것이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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