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해임안’ 본인 빼고 모두 찬성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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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를 일으키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박찬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석유화학 부문 회장)

28일 오전 11시쯤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에서 열린 금호석유화학 이사회 참석자 7명 중 복수의 이사가 전한 내용이다. 박찬구 회장은 이 자리에서 끝내 자신의 지분 매집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다.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기옥 사장 3명이 공동 대표이사였다. 이날 열린 이사회에는 이들 사내이사 3명을 포함해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김영일 한국ABC협회 상근부회장, 이수길 한국신용평가 고문, 민승기 전 도로교통공단 이사 등 사외이사 4명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날 이사회 의안은 ‘대표이사 박찬구 해임의 건’이었다. 박찬구 회장은 회의 예정시간보다 5분가량 늦게 도착했다. 그는 먼저 “해임안건은 잘못된 것이다”는 취지의 짧은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서너 차례의 짧은 발언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박찬구 회장은 평소에도 말수가 적은 편이라고 한다.

이사회에 참석한 한 사외이사는 “(박삼구 회장과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와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박찬구 회장이 ‘전반적으로 그룹 경영이 잘못됐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못마땅한 심정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은 그간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그룹이 대우건설·대한통운 같은 큰 기업을 잇따라 인수한 것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또 다른 참석자는 “박찬구 회장은 해임안에 대해 무기명 투표를 하자고 했다”며 “그러나 이사회 관련 규정을 검토한 결과 ‘기명 투표’를 해야 한다고 돼 있어 기명 투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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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특히 “그룹에 내분이 있는 것으로 외부에 비쳐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금호석유화학 지분 매집으로 내분을 초래한) 박찬구 회장의 해임안이 머저리티(다수)로 가결됐다”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과 그의 아들인 박준경 금호타이어 부장은 지난달 중순부터 이달 초까지 보유 중인 금호산업 지분 6.11%를 전량 매각하고 대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렸다. 이들은 금호석유화학지분을 10.01%에서 18.47%까지 높여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금호그룹 일가는 원래 형제경영 차원에서 그룹의 양대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균등하게 보유해 왔다. 따라서 박찬구 회장 부자의 금호석유화학 지분 매입은 계열분리 움직임으로 해석돼 왔다.

그는 또 “대우건설 매각을 비롯해 현 시점에서 구조조정을 원만하게 추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룹에 분열이 있는 것으로 채권단에 비춰지는 것은 안 된다”며 “경영상 지휘체계를 일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투표 결과는 박찬구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이 해임안 찬성표를 던졌다. 그는 이어 “해임건에 대해 이사들 간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감정적으로 격한 발언이 오가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박찬구 회장이 6대1의 결과가 나오는 것까지 모두 지켜본 후 자리를 떴다”고 말했다. 박삼구 회장은 이날 1시간40분가량 진행된 이사회 말미에 “가족경영 기업으로 동생을 물러나게 하는 데 도덕적 책임을 느낀다. 나도 물러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한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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