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립켄 2,632 게임 연속출장…기록행진 마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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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맥과이어와 소사의 홈런포가 지구촌을 뒤흔들 때, 그는 말 한마디로 또 한차례 지구촌 야구팬들을 감동으로 술렁이게 했다.

"이젠 때가 된 것 같다 (I think the time is right) ." 올해 스포츠계의 가장 기억에 남을 말 한마디가 '철인' 칼 립켄 주니어 (38.볼티모어 오리올스) 의 입에서 나왔다.

립켄은 21일 (한국시간) 뉴욕 양키스와의 홈경기에 앞서 레이 밀러 감독에게 선발 제외를 요청했고 17년동안 등에 지고 있던 '2천6백32경기 연속 경기 출장' 이라는 대기록의 짐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립켄은 지난 82년 5월 30일부터 연속경기 행진을 시작, 17시즌동안 하루도 선발을 거르지 않고 연속경기출장 기록을 이어온 '철인' 이다.

그는 지난 95년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여겨졌던 루 게릭 (전 뉴욕 양키스) 의 2천1백30경기 연속 출장기록을 넘어섰고 96년에는 기누가사 사치오의 일본 최고기록까지 깨버렸다.

이날도 당연히 3루자리에서 립켄의 모습을 기대했던 볼티모어의 팬들은 1회초 1사후 립켄이 더그아웃에서 나와 모자를 벗어들고 정식으로 기록의 마감을 알리자 기립박수로 그의 결단에 존경의 성원을 보냈다.

립켄의 기록은 몸을 사리거나 편법을 동원해 기록을 이어간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부상의 위험과 맞싸워 이뤄낸 것이라 더욱 값진 평가를 받고 있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기록을 위해 팀 전력이 약해지거나 다른 뛰어난 선수가 출장기회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판단, 스스로 물러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신인왕 출신으로 리그 MVP 2회 수상, 올스타전 16년연속 출장의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립켄이었지만 서른여덟의 나이는 그의 글러브와 방망이를 무디게 했고 더이상 초라해지기 전에 대기록의 부담을 덜기로 결심한 것이다.

립켄은 맥과이어와 소사의 홈런행진으로 팬들이 '야구를 되찾은 뒤' 기록행진의 마감을 알렸으며 날짜를 시즌 홈경기 마지막 날로 택해 홈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특별하다거나 후련한 감정은 없다. 단지 벤치에 앉아 경기를 본다는 것이 마음 편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

립켄은 경기가 끝난 뒤 22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원정경기에 다시 선발로 출장할 결심이라고 밝혔다.

1m93㎝.99㎏의 립켄은 60년 8월 24일 메릴랜드주 출생으로 마이너리그 포수 출신으로 볼티모어 오리올스 감독을 역임했던 아버지 립켄 시니어, 네살 터울의 동생 빌리 립켄과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야구가족이다.

78년 애버딘고를 졸업하고 마이너리그에 입단, 8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으며 올해까지 한번도 팀을 옮기지 않고 고향의 프랜차이즈인 오리올스의 간판으로 활약하고 있는 '메릴랜드의 영웅' 이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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