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학의 사회적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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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예를 들어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고용하여 그들에게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마련해주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벌이는 일 등이다.

어느 선진국 제약회사는 저개발국 사람들이 쉽게 진료받고 약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여 호평을 받았다.

또한 성공한 기업가들이 개인적으로 사회사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투자회사를 운영하여 많은 돈을 번 미국의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은 “시장경제는 참여자들에게 현저하게 균형을 잃은 보상을 한다. 특히 부자들에게 역량에 비해 과다한 몫을 준다”고 말하며, 재산의 대부분을 게이츠 재단에 기부한 바 있다.

기업의 경우와는 달리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 책임이 크게 거론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학도 사회적 책임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그 첫째 이유로 대학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써 모범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학생들에게는 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대학 자체는 비윤리적으로 운영되거나 극히 이기적인 행태를 보인다면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또 다른 이유로는 대학, 특히 명문 대학들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학생을 교육하는 기관이지만, 한편으로는 학생 선발을 통해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진입할 사람을 가려내는 역할도 한다.

즉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미래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얻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학의 학생 선발 기준은 고등학교나 수험생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학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그 지위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대학의 운영권을 가지고 친인척끼리 낯 뜨거운 싸움을 벌이는 일부 사학이나, 교수들끼리 편을 갈라 총장선거에 올인하는 일부 국공립대의 행태는 말할 나위도 없지만, 건전하게 운영되는 많은 대학들도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책임을 짊어지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교수나 직원의 임용에서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찾기 어렵고, 심지어 법에 정해져 있는 의무고용 비율을 지키지 않는 대학도 비일비재하다. 여교수 비율도 최근 증가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10%대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 대학들은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용광로’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생 선발 방식도 사회의 기득권을 공고하게 해줄 뿐, 진정한 밑으로부터의 신분상승을 가능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과거 사교육이 극성을 부리기 전에는 형편은 어렵지만 능력 있는 학생들도 상당수 명문 대학에 입학하였고, 그런대로 대학이 그들에게 신분상승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제 사교육이 번창하여 이러한 경우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도, 대학의 학생 선발 방식은 구태의연하게 운영되어 잠재력 있는 인재를 선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명문 하버드대학은 오바마라는 결손가정의 흑인 청년을 입학시켜 장차 세계를 이끌어갈 인재로 키워냈는데, 과연 우리나라의 명문 대학들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 그런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이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 취임 연설문에서 “한 국가가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혜택을 베푼다면 번영을 오래 누릴 수 없습니다(A nation cannot prosper long when it favors only the prosperous)”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국가 경제의 성공은 국내총생산(GDP)의 규모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번영을 골고루 누리게 하고 의욕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도 달려 있습니다”라고 설파하였다.

의욕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대학들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사회적 책무가 아닐까.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