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세상보기]수령의 고부가가치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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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엔 사무총장이 뭬라 하던?"

"인접국에 사전 통보없이 로켓 추진체를 발사한 것은 유감이라고 합데다. " "우리는 대기권 밖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는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가.

이게 다 일본과 미제가 우리를 모함해서 그래.

일본의 광증 (狂症) 은 나중에 손보기로 하고, 우선 미국에 경고하라우. 우리를 선불질하면 복수의 불벼락밖에 맞을 게 없다고. 로켓 사정거리 6천㎞면 알래스카까지 가지? 거기엔 뭬가 있니?"

"빙하와 석유밖에 없시요. 거긴 목표물이 될 수 없시요. " "1만㎞면 위스콘신까지 간다며? 거긴 뭐가 있는감?" "거기엔 밀밭과 목장뿐이야요. 좀 더 가야 뉴욕.워싱턴이 나와요. "

"그럼 사정거리를 1만㎞ 이상으로 높여. 불벼락은 도시를 좋아해. 백악관을 박살낼 수 있는 것은 외계인뿐만이 아니라고 해. " 교시를 끝낸 새 수령은 창 밖의 대동강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어버이 수령이 가신 지 어언 4년, 그때부터 내리 겪은 가뭄과 홍수로 자칫하면 공화국이 망할 것 같은 위기를 잘도 넘겨 왔다.

수령은 고부가가치 (高附加價値) 산업이라는 시장경제 용어가 공화국을 먹여 살리게 된 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부가가치란 무엇인가.

당신이 밀가루 1백원어치를 사서 빵을 만들어 1백50원에 팔았다면 50원이 부가가치다.

그 50원은 당신의 임금이나 이윤으로 장롱 속에 들어갈 것이다.

비서가 들어와 고부가가치산업 진흥에 관한 극비계획을 보고한다.

"10월부터 열리는 북.미 대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합니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지 않는 대가로 5억달러,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개발을 중단하는 대가로 매년 10억달러, 장거리 로켓 제조기술을 수출하지 않는 대가로 5억달러를 벌 계획입니다. "

"로켓이나 인공위성을 만든 재료와 기술이 모두 우리 것이니 부가가치 백%야. 니네들은 그 의미나 알고 있네?"

"그러니까 수령은 향도성 (嚮導星) 이자 광명성 (光明星) 이야요. 그리고 제2의 부가가치산업인 배짱외교를 통해서도 수익을 높일 작정입니다.

4자회담에 응하는 조건으로 중유 3천만달러어치, 미군 유해 수색을 재개하는 조건으로 식량 10만t을 법니다. 이미 영변 핵개발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50억달러짜리 경수로를 얻은 것은…. "

"그건 다 알아. 다음. "

"제3의 부가가치산업인 금강산 관광은 장전항 공사 관계로 좀 늦어지겠습니다. 그러나 관광객 1인당 3백달러, 1년 50만명 유치계획은 변함이 없고 이렇게 될 경우 1년에 1억5천만달러를 벌게 됩니다. "

"남쪽에서 금강산도 식후경 (食後景) 이라고 하지 않던?" "그렇게 불평하는 사람이 있길래 고려국에 태어나면 금강산을 보고 죽어야지 극락에 간다고 했시요. 금강산 관광은 햇볕정책이 낳은 옥동자라고 남쪽에서도 야단이야요. " "그건 그래. 우리가 어떤 망나니 짓을 해도 그들은 햇볕정책을 바꾸지 않겠다고 약속했지. 그러니 별일 없을 게야. "

"그런데 그들은 햇볕정책이 북쪽에 이로운 게 아니라고 말해요. "

"그러면 해롭다는 말인가. 햇볕의 뒤에 어떤 계략이 있다는 말인가.

그러면 당장 햇볕정책을 거두라고 해. 괜히 서울이 불바다 되기 전에. (아 헷갈린다, 헷갈려. 햇볕의 아이러니냐 인생의 요지경이냐. )"

생각을 멈춘 수령은 또 창밖을 본다.

"오늘따라 대동강 강바람이 왜 이리 시원한고. 을밀대 (乙密臺) 야, 부벽루 (浮碧樓) 야 말 좀 해다오. 이제 시간은 우리식 사회주의의 북쪽에 있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남쪽에 있지 않구나. 그러니 내일 아침엔 편지를 써야겠다. 불과 4년 사이에 시간의 위치를 바꿔준 남쪽 지도자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

김성호(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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