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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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제5장 길 끝에 있는 길

그때, 한씨네들은 경북 의성의 남선동 읍내장에 있었다.

의성에는 읍내장과 더불어 안계.도리원.단촌.금성장들이 있었다.

모두가 면소재지에서 열리는 시골장시였지만, 장마다 나름대로의 특질을 지니고 있었다.

남선동 읍내장에서 거래되는 의성 육쪽마늘은 매운 맛과 더불어 특유의 향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대도시의 소비층들은 너도나도 의성마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성 육쪽마늘은 수입한 중국산처럼 절대로 껍질을 깐 채로 거래하지 않는다.

육질이 단단해서 저장성이 탁월한 충청도 단양 마늘장의 규모를 앞지를 만하였고, 단촌의 고추장도 고추가 한물로 쏟아져나와 천세날 적에는 온 장바닥이 매캐한 고추냄새로 진동하였고 덩달아 다른 농산품이나 공산품들의 구매력이 치솟았다.

충북의 괴산이나 음성도 예부터 전통적으로 재배해 왔었던 담배밭을 갈아엎고 고추재배로 작목을 바꾼 탓에 고추시장이 번성하지만, 요사이 들어 청결미로 유명해진 안계와 단촌장도 고추장으로는 두 고장에 버금갈 만한 규모였다.

그래서 그들 토산품 때문에 의성읍내장과 단촌장과 안계장에는 토박이 상인들보다 외지에서 찾아온 상인들의 수효가 더 많았다.

남선동 의성장 초입은 그래서 외지에서 달려온 상인들의 차량들로 길을 메울 지경이었다.

8월에 있었던 기습성 폭우로 곳곳의 농지들이 결정적인 수해를 입은 뒤로는 쇠고기로 상추를 싸먹는다는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의성지방의 마늘은 예부터 성가를 지녔던 농산물이어서 마늘 한 트럭을 싣고 나가면, 쇠고기 한 트럭을 싣고 돌아온다는 흰소리 아닌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늘 한 트럭에 쇠고기 세 트럭값으로 거래된다는 말이 또한 농담이 아니었다.

더욱이 의성마늘은 특유의 향내를 지닌 특질 외에도 단양 마늘이 가진 저장성도 우수해서 철 이른 구매를 한다 해도 저장했다가 값이 뛸 때 팔아도 마늘의 특질이 고스란히 보전되기 때문에 외지상인들이 눈독을 들이는 농산물이었다.

그래서 토박이 상인들은 장의 북쪽 골목을 지키고 있다가 시골 아낙네들이 가지고 나온 마늘을 흥정해서 장의 남쪽에 있는 외지상인에게 제자리 되넘겨치기로 팔아도 수월찮은 이문을 챙길 수 있었다.

한 마리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던 소값은 50만원대로 폭락하고 말았지만, 예년에는 한 접 (백개를 한 묶음으로 함)에 1만4천, 오천원선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던 마늘 한 접 값이 수해를 겪은 이후로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낱알이 굵고 또렷한 상품 마늘 한 접이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3만원대를 호가하고 있었다.

6백g (한 근)에 3천원대에 팔리던 고추도 벌써 산지에서부터 7천원대로 올라 있었다.

그래서 예년 같았으면 토박이 상인들의 몫이었던 알량한 이문 따위도 올해는 기대할 것이 못되었다.

의성장에 당도한 한씨네는 장터 초입에 있는 침구전 곁에 휘장을 치고 좌판을 벌였다.

장타령을 불러보았지만, 상인이건 장꾼들이건 모두가 마늘과 고추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전혀 매기가 없었다.

그러나 실망할 것이 아니었다.

장바닥에 돈이 풀어져 나오려면 정오가 가까워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마늘과 고추를 가지고 나온 촌부들의 손에 돈이 들어가자면, 어차피 농산물시장의 거래가 마무리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변씨가 마늘과 고추장이 열리고 있는 장판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마늘과 고추장은 새벽부터 아침까지 열리기 때문에 오전 9시경이었던 그때가 한 장이기도 했다.

흥정과 시비와 떠들썩함이 끊이지 않는 노점상 좌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보면, 강원도에선 볼 수 없었던 희귀한 광경과 만날 수 있었다.

원래는 남성들의 활동무대였던 장터의 풍속이 아낙네들의 무대로 바뀐 것은 강원도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뜨내기 상인들과 흥정을 하고 있는 아낙네들의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노라면, 아낙네 혼자가 아닌 부부동반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상인을 상대하여 흥정을 벌이는 쪽은 언제나 아낙네들의 몫이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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