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한국전, 휴전 이후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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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그렇다면 6·25 전쟁은 훨씬 더할 것이다. 올해는 6·25 발발 59주년이고 사흘 뒤인 27일은 정전협정이 조인된 지 56주년이 된다. 미국 하원은 한국전쟁 휴전일인 7월 27일에 조기(弔旗)를 게양해 기념하도록 하는 법안을 며칠 전 통과시켰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매년 학교에서 ‘6·25 기념 주먹밥 체험’ 시식 행사가 열린다. 그런데 아이들이 잘 안 먹을까 봐 따뜻한 밥에 깨·야채·참기름을 비벼 넣어 주먹밥을 만드니까 ‘너무 맛있다’며 좋아하더라. 이래서야 교육 효과가 없을 게 뻔해 올해는 덜 맛있게 만들었다.” 그러니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이 반세기 전 굶주리며 벌판을 헤매다 누군가로부터 얻어먹은 얼어붙은 주먹밥 맛을 알 턱이나 있을까.

『전쟁체험의 전후사(戰後史)』(후쿠마 요시아키 저)라는 일본 책을 최근 재미있게 읽었다. 45년 패전 후 일본에서는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일본 병사, 특히 전사자가 남긴 수기(手記)를 모은 책 여러 권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전장에 끌려갔다가 숨진 대학생들의 수기집 『들어라, 바다신(神)의 목소리를』이 대표적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학도병’에 대한 시각을 놓고 최근까지 지식인들이 치열한 논전을 벌였다. 제국주의 정부의 강압으로 전쟁에 동원돼 죽었으니 ‘희생자’라는 시각도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 내에서는 희생자일지 몰라도 한국·중국 등 피침략국에는 엄연한 ‘가해자’라는 주장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전쟁 중에 대학을 다닌 탓에 학도병이 된 전중파(戰中派)와 그 위 세대인 전전파(戰前派), 패전 즈음에 태어난 전후파(戰後派) 간에는 시각차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전몰 학도병이 반전·평화의 상징이라는 점에는 대개 동의했는데, 69년에 이르러 여기에도 균열이 생긴다. 사립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 구내에 세워져 있던 전몰 학도병 동상을 전공투(全共鬪) 계열의 운동권 학생들이 무너뜨렸던 것이다. 고도성장기에 태어난 이들은 전후의 일본을 ‘철저히 관리되는 선진 제국주의 사회’로 보고 그 상징인 동상을 훼손했다고 한다.

전쟁 같은 큰 사태가 일단락되면 반드시 그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지를 놓고 ‘기억의 전쟁’이 벌어진다. ‘전쟁 후의 전쟁’이다. 그나마 일본은 자국 내에서 기억의 전쟁을 벌였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바깥에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다. 탈북 동포들이 가장 당황하는 게 ‘6·25는 남침’이라는 말을 들을 때라고 한다. 북침 아닌 남침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 보통 1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게다가 같은 한국 내에서도 “6·25는 북한이 일으킨 통일전쟁”이라고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남과 북, 이념에 따른 시각차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바로 ‘세대 간 차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 부모로부터 간접경험을 한 세대가 아닌 자라나는 세대를 잘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어른들도 아직 소화를 끝내지 못한 6·25를 어떻게 해야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까. 6·25는 아직 역사로 정착되지 못했고, 전쟁을 겪은 세대의 체험은 풍화(風化)작용이 한창인데 말이다. 기성세대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