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인사들이 바라본 일왕-천황 호칭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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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 박경리 (朴景利.소설가) =진실이 아닌데 그대로 따라하다니 참으로 착잡하다. 천황이란 것은 말 그대로 하늘의 제왕이고 일본의 왕은 당연히 '일왕' 이 아닌가.

도무지 모순이란 생각뿐이고 일본에 대한 저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떤 실리가 있기에 그러는지 나는 자세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 호칭문제는 실리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 안병욱 (安秉煜.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 =일단 반대다.

정부의 설명과 달리 엄밀히 말해 천황은 우리가 읽는 한자식 표기일 뿐 고유명사가 아니다.

정말 고유명사로 인정하려면 일본식 발음 그대로 '덴노' 로 써야 한다.

가뜩이나 천황은 일제 36년의 수탈과 식민통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단어다.

틈만 생기면 터져나오는 일본 극우파들의 발언이나 태도를 고려할 때 우리의 천황 호칭은 상호주의적 입장에서도 용납하기 힘들다.

◇ 이이화 (李離和.역사문제연구소장) =크게 두 가지 입장에서 찬성할 수 없다.

첫째, 세계사적 보편성 문제인데 천황은 시대착오적 단어다.

일본이 아니고 지구촌 어디서 황제보다 더 높은 개념인 천황을 사용하겠는가.

둘째, 민족사적 특수성의 문제다.

굳이 식민지배를 다시 거론하자는 게 아니라 천황이란 단어로 상징되는 우리의 현대사적 고통을 잊어버려선 안된다는 뜻이다.

◇ 홍윤기 (洪潤基.문학박사) =일본의 국왕호칭이 '천황' 인 만큼 공식방문하는 경우 천황 호칭은 외교관례상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중국 등 한자권 국가에서도 천황이라 불렀고, 서구 국가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엠퍼러 (emperor)' 로 불러 왔다.

과거 임진왜란과 한일합방 등 일본이 저지른 침략행위를 규탄하는 반일감정과 천황 호칭은 별개 차원이다.

◇ 주철환 (朱哲煥.MBC책임프로듀서) =일단 찬성하는 입장이다.

호칭은 우선 그쪽 사람이 듣기 좋게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식적인 것이어서 문제가 되는데,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를 추구한다는 차원에서 받아들였으면 한다.

지금까지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그들을 반성하기보다는 반발하도록 하는 쪽이었다. 우리부터 마음을 열면 어떨까.

◇ 유하 (시인) =조심스런 견해로 '천황' 호칭도 큰 상관이 없다고 본다.

'중화민국' 이라는 말도 알고 보면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말인데 자연스럽게 사용하지 않느냐. 그 맥락에서 일본인들이 천황이라 하고 다른 나라가 그렇게 부른다면 우리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럽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문제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이 우리를 격하시키는 콤플렉스 아닐까.

◇ 오범조 (吳範兆.서울대 미생물학과 3년) =천황은 일본사회의 보수성과 통합의지를 담은 정치적 단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양국의 화해와 진취적 관계도 중요하지만 과거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민족적 입장이 먼저 정립돼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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