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 30발 한번에 쏘는 ‘다연발 사제총’ 까지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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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에 위치한 쌍용차 평택공장. 20일 오후 3시쯤부터 ‘펑·펑·펑…’ 총포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볼트와 너트가 소나기처럼 경찰 쪽으로 날아들었다. 볼트와 너트는 업무를 위해 공장에 들어가려는 쌍용차 직원들에게도 향했다.

굉음의 진원지는 노조원들이 이날 오후 도장공장 옥상에 설치한 ‘다연발 사제총’이었다. 지름 10㎝, 길이 1.2m 정도의 쇠파이프가 총신으로 쓰였다. 추진 연료로는 부탄가스가 사용됐다. 한 번에 30발의 너트와 볼트를 쏠 수 있게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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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공장을 점거하고 있는 600여 명의 쌍용차 노조는 휴대용 새총과 고정된 새총을 넘어 자체 제작한 다연발총까지 시위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경찰청 관계자는 “노조원들이 공장 내의 부품을 이용해 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외부세력을 통해 제작 방법을 전수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제총은 많이 봤지만 다연발총을 제작해 쓴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도장공장에서 날아온 너트는 경찰이 제작한 ‘아크릴 방호벽’을 쉽게 뚫었다. 경찰은 공장 진입을 위해 바퀴가 달린 ‘이동식 방호벽’을 만들었다. 강화 아크릴 뒤에 철망을 덧댔지만 역부족이었다. 경기청 126전경대 박창복 경감은 “볼트가 머리 위를 날아갈 때 바람을 가르는 ‘윙’ 소리가 난다. 순간 한기가 느껴지며 머리칼이 쭈뼛 선다”고 했다. 같은 부대 안세중 상경은 “도장공장에서 250m가량 떨어진 정문에 서 있던 동기가 볼트에 다리를 맞아 심하게 부었다”고 말했다.

경찰뿐만 아니라 쌍용차 직원들도 부상을 당했다. 이 회사 정무영 홍보부장은 “20일 오전 11시 본관 건물로 들어가던 직원이 볼트에 머리를 맞아 9바늘을 꿰맸다. 도장공장과 200m 이상 떨어진 지점이었다”고 말했다. 21일에도 쌍용차 직원 2명이 볼트와 너트에 맞아 부상했다. 이 중 한 명은 팔이 부러졌다.

‘파괴력이 크고 사거리가 긴 무기’는 옥상에 고정된 새총이다. 40~50cm 정도 되는 쇠파이프를 용접해서 만들었다. 지난해 6월 촛불시위 때 사용된 ‘휴대용 새총’은 쇠구슬을 사용했다. 손에 들고 쏘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파괴력도 고정용에 비해 훨씬 약하다. 그러나 경찰 실험에 따르면 휴대용 새총의 사거리는 119~169m, 속도는 초속 90m였다. 이는 탄알 속도의 3분의 1에 해당된다. 쌍용차 노조가 사용하고 있는 ‘고정된 새총’의 최대 사거리는 250~400m다. 지난해 경찰 실험에 사용된 새총의 2~3배에 이르는 수치다.

다연발총은 집중 공격을 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청 관계자는 “사거리는 150m 정도로 고정용 새총에 미치지 못한다”며 “그러나 한꺼번에 수십 발을 쏠 수 있어 상당히 위협적”이라고 설명했다.

새총이 시위 도구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광주·전남 지역 대학생 시위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엔 주로 철근 조각을 날렸다. 90년대에는 현대중공업·대우조선 등 파업 시위 현장에서 베어링을 발사하는 새총이 많이 쓰였다. 2003년에는 민주노총의 도심 집회에서 새총이 등장했다. 재개발 지역의 시위에도 종종 등장했다.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한 1월 용산 사건 때도 새총이 등장했다. 시위에서 새총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제작하기 쉽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위험물로 등록해 막는 방법도 있지만 어디서든 만들어 공급할 수 있어 고민”이라며 “휴대용 새총의 경우엔 용산 등지에서도 구입할 수 있어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새총과 다연발총 사용자를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 혐의로 입건할 방침이다.

새총 사용에 대해 시위대는 경찰의 물대포나 최루액 등에 대응할 만한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자기 방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강인식·장주영·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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