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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 박 전 대표 ‘미디어법중재안’ 현실성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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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강래 원내대표가 눈을 감고 사회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안성식 기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15일 자신의 미디어법 대안의 윤곽을 밝혔었다. “한 회사의 시장점유율을 매체합산 30% 이내로 인정한다면 여론 다양성도 보호하고, 시장 독과점에 대한 우려도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언급이었다. ‘매체합산 점유율 규제’란 개념이다.

측근들은 “독일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찾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공교롭게도 한나라당 역시 독일 방식을 원용한 ‘시청점유율 제한’을 새 대안으로 마련했다. 한나라당은 20일 민주당과의 협상에서 박 전 대표의 ‘매체합산 점유율’ 방안 역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쟁점이 된 매체합산 점유율 규제는 과연 한국 상황에서 현실성 있는 대안일까. 또 원조 격인 독일의 실제 규제 방식은 어떠한가.

◆독일, 방송 진입에 제한 없어=독일 ‘방송국가협약’ 26조1항은 방송 사업자가 여론 지배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방송 채널을 무제한 설립할 수 있게 했다.

2항에선 여론 지배력의 범위를 밝힌다. 즉 ▶한 방송사업자가 시청 점유율을 30% 이상 차지하거나 ▶시청 점유율이 25%를 약간 웃돌더라도 인근 미디어 시장(신문·라디오 등)에서 영향력이 클 경우다. 굳이 구분하자면 전자는 한나라당 안에, 후자는 박근혜 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두 조항을 한나라당 수정법안 원안에 대입시키면 어떨까. 우선 새로 생기는 우리의 종합편성채널이나 보도채널의 경우 독일법에 아무런 저촉이 되지 않는다. 굳이 문제가 된다면 지상파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MBC 등을 인수합병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안은 신문과 대기업이 지상파 지분을 20% 이내만 갖게 했고, 2013년까지 겸영을 유예했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 적어도 독일법 기준으론 한나라당 안이나 박근혜 안이나 차이가 없다.

◆ 악셀 슈프링거 사례의 진실은=MBC는 그간 “2006년 (신문 등 많은 매체를 보유한) 독일의 미디어 그룹인 악셀 슈프링거가 지상파 방송사 프로지벤자트아인스를 인수하려 했지만, 여론독과점 문제로 지상파 진출이 금지됐다”는 보도를 했다. 그러나 이 사례를 마치 신문의 지상파 진입 자체가 막힌 것처럼 인용하는 건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심영섭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강사는 “악셀 슈프링거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미 프로지벤자트아인스의 지분을 21% 소유하고 있었다”며 “지분을 49%로 늘려 경영권을 행사하려 하는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체별 가중치 합의 어려워”=문재완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교수는 “매체합산 점유율을 계산하려면 신문과 인터넷, 잡지 등의 매체별 비중을 정해 일정 기준으로 환산해야 한다”며 “이 기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넷의 비중을 계산해 내기도 어렵고 급속도로 위축되는 신문시장의 영향력을 매년 변동시킬 수도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20일 매체합산 점유율 제도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한 문방위원도 “여러 매체를 한 시장으로 보고 매체별 가중치를 계산하는 건데 이는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셈법”이라며 “독일도 그 기준을 놓고 소송이 진행 중이고, 세계 어디에도 정착되지 않은 제도”라고 지적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 관련 기준을 정하는 데만 무수한 세월이 지나 결국 민주당 의도대로 법 자체가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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