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IMF시대의 '비상'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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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가 확정한 98세제개편안은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하의 한시적 내지 비상 (非常) 세제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구조조정과 경기활성화를 돕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감세조치가 필요하다.

반면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줄이려면 세수확대 또한 긴요하다.

이 '두 마리 토끼' 를 동시에 쫓는 과정에서 세제의 골간이 일부 일그러지고 과세의 형평성이 들쭉날쭉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번 세제개편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 경제의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인 구조조정을 세제면에서 적극 지원키로 했다는 점에 있다.

대규모 사업교환과 기업개선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동산 등의 취득세와 등록세를 모두 면제해주고 주식교환에 따른 양도세, 부채인수에 따른 각종 세금 등을 과세이연.분할납부 등의 방식으로 지원한다.

구조조정촉진을 위한 한시적 (限時的) 성격의 세제다.

대외신뢰를 확보하고, 외국투자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기업투명성 보장을 위한 세제상의 대책을 마련한 점 역시 돋보인다.

기업재산의 개인적 사용이나 유출을 방지하고, 5만원 이상 접대비지출시 신용카드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각종 경비의 처리기준을 국제기준에 따라 명확히 한 것도 잘한 일이다.

반면 내수진작을 통한 경기활성화나 근로자 및 중산층의 세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감세조치엔 인색한 느낌이다.

양도소득세율을 과표단계별로 10%포인트씩 내렸을 뿐 소득세와 법인세는 세율을 낮추지 않았고 내수진작 차원에서 검토해 오던 특별소비세율 인하 역시 계속 검토사항으로 남겨 놓았다.

세수부족 우려 때문이다.

실업증가와 소득감소를 감안해 근로소득세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들도 많았지만 소득세율이 누진제로 돼 있어 소득이 줄면 그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세금부담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반영되지 않았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역시 '경제전반에 미칠 부정적 영향' 을 우려해 중장기과제로 돌렸다.

새로운 세원 (稅源) 발굴과 음성.불로소득에 대한 과세강화는 묵은 숙제지만 매출누락의 대명사처럼 통하고 있는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의 수입금 양성화처방이 고작이다.

경기침체로 세수확보에 비상이 걸려 있는데도 조세부담률은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부족분은 재정적자로 메운다는 얘기가 된다.

세율을 내려 놓을 경우 세입기반이 약화돼 경기회복시 건전재정으로 복원력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세와 재정적자는 선택의 문제다.

어차피 이번 개편안은 그 한시적 성격 때문에 경제가 회복.안정되면 손질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대내외 경제여건의 추이를 지켜보며 내수진작과 투자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탄력적으로 운용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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