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대신 프로행 … ‘청용의 꿈’ EPL서 영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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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 중 최연소로 프리미어 리그 입성을 눈앞에 둔 이청용. [중앙포토]

21세. 이제 갓 약관의 나이를 지났을 뿐이지만 이청용(FC서울)은 이미 꿈의 중심에 다다랐다.

이청용이 20일 영국으로 출국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 원더러스와 입단계약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다. 서울이 볼턴의 제의를 수락함에 따라 이청용은 현지로 건너가 연봉·기간 등 세부조건을 조율하는 일만 남겨뒀다. 일이 순조롭게 풀리면 곧장 메디컬 체크를 받고 계약서에 사인하게 된다.

박지성(맨유), 이영표(토트넘), 설기현(울버햄턴-풀럼), 이동국(미들즈브러), 김두현(웨스트브롬), 조원희(위건)에 이어 7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다. 박지성이 2005년 맨유 유니폼을 입었을 때가 24세. 이청용은 박지성보다 세 살이나 어릴 때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다. 한국 선수 중 최연소다.

◆15세 중학생 이청용의 선택=도봉중 3학년이던 2003년 여름, 이청용은 서울 구단으로부터 “당장 프로로 오라”는 파격 제의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 이장근(50)씨는 겁이 났다. 이씨는 “4개월 넘게 고민했다. 학업을 포기한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어차피 축구선수를 할 거라면 좋은 환경에서 하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청용은 “가끔 친구들처럼 고등학교·대학교에 진학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후회와 걱정을 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축구가 아니면 할 게 없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흙먼지가 이는 학교 운동장이 아니라 융단 같은 프로팀의 천연잔디 위에서 매일 훈련할 수 있었다. ‘4강 진출’ ‘우승’ 등의 눈앞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기량을 닦아 나갔다. 실제 경기 중에 장난치듯 자유자재로 공을 다루는 그의 개인기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났다.

◆2006년 고비와 2007년 도약=이청용은 지금까지 가장 어려웠던 순간으로 2006년을 꼽는다. 서울에 입단한 지 4년째였다. 이청용은 “2군에만 머물 때는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1군과 2군을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2006년 이청용은 1군에서 4경기에 출전해 어시스트 1개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2007년 세뇰 귀네슈 감독의 부임이 이청용의 축구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귀네슈 감독은 겨울훈련 때 이청용을 불러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자신감을 심어주더니 시즌 초반부터 베스트11로 출전 기회를 줬다. 준비된 이청용은 K-리그에서 발군의 기량을 뽐냈다. 2007년 캐나다 20세 이하 월드컵,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며 국제 경험을 쌓아갔다. 올림픽 직후 대표팀(A팀)에 발탁됐고, 이내 주전을 꿰찼다. 대표팀 미드필드 왼쪽에는 박지성, 그 반대편에는 그가 있다.

◆기량은 충분, 문제는 적응력=귀네슈 서울 감독은 이청용에 대해 “기량만 놓고 본다면 유럽에서 충분히 통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도 “정신적으로 좀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 힘든 순간에 기댈 가족과 친구들이 있지만 유럽은 다르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는 물론이고 심지어 먹는 것까지도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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