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내면 입주 … 살아본 뒤 잔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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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불 꺼진 창’으로 일컬어지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로 건설업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방에 악성 미분양 아파트를 많이 갖고 있는 건설업체들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어 주택 수요자들의 관심을 끈다. 분양가의 10%만 내면 입주와 함께 소유권을 이전해 주는가 하면, 전셋값의 일부에 일정 금리를 붙여 현금으로 돌려주기도 한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내 집 마련 수요자들에게는 보다 많은 혜택을 받고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일단 전세라도 놔서 불 켜자”=전통적이지만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게 바로 전세. 완공된 아파트를 업체 명의로 등기를 내고, 전세를 줘 불을 켜게 만드는 것이다.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단지 대부분은 이처럼 전세를 놓는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브랜드 이미지에 해가 된다며 임대하지 않던 대형 건설업체들의 인기 브랜드 단지도 임차인을 구하기 위해 주변 시세보다 싸게 전세를 내놓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방법도 그나마 자금 사정이 괜찮은 업체나 가능하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전셋값은 보통 분양가의 40~50% 정도인데 업체가 아파트를 짓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은 대개 80~90%”라며 “임대하더라도 대출금을 다 갚을 수 없는 데다 임대기간(2년)에는 사실상 분양을 포기해야 하므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업체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 업체들은 전셋값을 은행 대출금만큼 받는 대신 주변 전세 시세를 초과한 금액에 대해 일정 금리를 적용해 매달 현금으로 돌려주기도 한다. 고려주택은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의 풀비체 158㎡ 주택형(공급면적)에 대해 전셋값으로 2억5000만원(가구당 평균 대출금)을 내면 주변 시세(1억8000만원 선)를 초과하는 7000만원에 대해 연 8.5%의 금리를 적용, 매달 현금으로 50만원 정도를 돌려준다. 아파트를 짓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을 일단 갚겠다는 의도다. 은행에 줘야 할 이자를 세입자에게 주는 것이다.

◆분양가 일부만 받고 입주부터=분양률과 입주율을 동시에 높이기 위한 방안도 나온다. 분양가의 10~30%만 받고 입주(소유권 이전 등기)시킨 뒤 잔금 납부를 유예해 주는 것이다. 최근 입주한 대구시 수성구 동일하이빌레이크시티와 보령시 명천동 코아루는 각각 계약금의 10%, 30%만 내면 입주(등기)할 수 있다. 잔금은 2년 뒤에 내면 되고, 중도금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된다.

대출 이자는 업체가 내준다. 명천동 코아루를 분양 중인 한국토지신탁 관계자는 “연초 1차로 이 같은 상품을 내놨었는데 의외로 주택 수요자들의 반응이 좋아 최근 다시 이 상품을 내놨다” 고 말했다.


부산도시공사도 장기 보유 중인 구시티타워와 거제유립노르웨이숲의 미분양 해소를 위해 5년 무이자 할부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나섰다. 분양가의 30%만 내고 입주한 뒤, 나머지 70%는 5년간 무이자로 나눠 내도록 했다. 또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 동래2차 SK뷰는 일부 주택형에 한해 분양가의 50%를 6년 뒤 납부토록 했다.

분양 컨설팅업체인 한아름기획 강주택 사장은 “계약자는 전셋값보다 훨씬 싼값에 새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어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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