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의 세상 탐사] 좌파로 말하고 우파로 생활하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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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02면

이념갈등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다. 대립과 반목은 뿌리 깊다. 그 속에서 약삭빠른 삶의 방식이 있다. 지도층 일각에서 생활의 지혜로 전수된다. “좌파로 말하고 우파로 생활하기”다. 언행(言行)불일치의 이중성이다. 하지만 그 솜씨가 좋으면 이미지 관리에 도움을 준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런 기법이 유효할 때가 있다.

좌파적 가치는 평등·분배·평화·환경 쪽이다. 한국은 그런 명분의 전통이 있다. 그것을 적절히 내세우면 기품을 갖춘다. 얼치기라도 의미 있는 진보 쪽에 설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그런 부류 지도층의 진짜 삶을 들여다보면 상당수는 그런 가치와 거리가 멀다. 얼치기일수록 자본주의 속물이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최상급 와인을 찾는다. 반면 서민의 어려움에는 무관심하다. 기부와 봉사에 인색하다. 그런 부류는 대체로 재테크 달인이다. 말로는 4대 강 개발을 환경오염으로 걱정한다. 그러면서 주변 부동산 동향에 열중한다. 좌우 불일치의 위선적 행태다.

그런 부류의 반대는 우파로 말하고 좌파로 생활하기다. 그런 쪽의 언어는 개발·성장·수월성·질서다. 그들은 보수적 가치의 수호자를 자임한다. 심하면 골통소리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삶의 경제적 측면은 시원치 않다. 소주를 즐기면서 골프장은 비싸서 못 가고 주말등산으로 만족한다.

한나라당의 무기력은 구제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당의 정체성이 의원들에게 각인되지 않아서다. 정체성과 생각의 불일치다. 정체성의 출발은 우파적 가치다. 이명박(MB) 대통령의 중도실용은 그것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의원 다수의 실제 행태는 어설픈 웰빙 요소로 짜여 있다. 이념체계가 엉성하다. 그러니 공룡 여당이 소수 야당에 꼼짝 못한다. 그 많은 초선의원 중 스타 탄생이 없는 이유다.

교육은 지도층 언행 불일치의 주요 사례다. 심했던 것은 노무현 정권 때다. 그 시절의 정책 기조로 평준화를 외쳤다. 그렇지만 당시 여당 지휘부, 친여(親與) 시민단체 간부의 상당수는 자녀 과외에 열을 올리고 미국에 유학 보냈다. 평준화 정책을 믿었던 서민들은 낭패와 배신감에 젖었다. 그 후유증은 계속되고 있다. 교육 정책과 얽힌 지도층에겐 자녀교육 실명제가 필요하다.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켰는지 말한 뒤 정책을 내놓거나 토론해야 한다. 교육은 이념적 잣대, 자신만의 경험을 함부로 들이댈 사안이 아니다.

이 대통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내세웠다. 그것은 사회적 리더십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 인사를 철회하는 이유로 삼았다. 그 행동기준은 솔선수범, 청렴, 재산의 사회 환원, 서민 챙기기, 자선이다. 그런 풍토를 단단히 해주는 동력은 지도층의 언행일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안보 문제로 단련됐다. 미국과 유럽의 상층부는 전쟁 일선에 앞장서 자제들을 내보냈다. 극단적 상황에서 솔선수범이다.

한반도는 역사적 전환기에 들어가 있다. 핵무기 개발과 김정일 정권의 권력 이양 문제는 긴박감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감증은 심각하다. 우파는 미국의 핵우산에 안주한다. 좌파는 수구적 친북 과격세력이 설친다. 북한 상황은 한국의 운명을 가른다.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는 데 나서지 않으면 우리 지도층은 역사의 주도권을 잃는다. 그런 노력이 없는 한 민족과 나라 사랑은 공허해진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의 이중성과 위선을 깨야 한다. 그래야 MB시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힘을 갖춘다. 중도 강화론도 단단해진다. 그것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넘어 선진국으로 가는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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