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핵 보유국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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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호 35면

이제 받아들여야만 할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은 핵 보유국이다. 그리고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자발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핵무기를 강제로 제거할 방법도 없다. 핵시설들을 폭격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몇 개나 갖고 있고 어디에 숨겨 두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선 탁상공론일 뿐이다. 혹자는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해야 된다고 주장하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핵무기를 더 많이 양산하기 위해 열을 올릴 것이고 동북아 지역에선 모든 나라가 경쟁적으로 핵무장을 하는 악몽 같은 상태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이제 와서 누구 때문에 북한이 핵을 보유하게 됐느냐는 논쟁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대북 퍼주기’가 원인이라느니, 아니면 조지 W 부시 시절의 대북 강경책이 빌미를 준 것이라느니 하는 식의 상호 비방적이고 ‘남 탓’을 하는 소리들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소는 잃었고 버스도 떠났다. 남은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뿐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사고방식과 정책은 북한이 핵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를 전제로 하거나 핵 보유를 저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러나 이제는 하루빨리 새로운 현실에 맞는 발상의 전환을 꾀하고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대북정책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 보유가 남북 간 세력 균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냉철하게 계산해 봐야 한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남북 사이엔 군사적·외교적·경제적 균형이 어느 정도 유지됐다. 북한 경제는 70년대 초반까지 남한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외교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80년대 초반까지는 오히려 남한이 북한에 밀리고 있었다. 월남이 패망하고 미국이 중공과 수교하고 주한미군 철수가 내내 안보상의 최대 화두였던 상황에서, 북한은 소련과 중공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한편 비동맹권과의 교류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남한을 앞지르고 있었다. 7·4 남북 공동성명은 남한이 이 당시 느끼던 위기의식의 발로였다.

군사적으로도 북한은 월등한 상황이었다. 남한이 북한과 군사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미 동맹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미국의 핵우산 덕분이었다. 즉 재래식 군사력에서 북한에 뒤졌으나 남한이 북한과의 전략적 등가성(strategic parity)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전략적·전술적 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남북 간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소련과 동구권이 급격히 무너지고 중국이 자본주의식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했다. 게다가 남한이 고도 성장을 지속하면서 민주화를 이룩하는 반대편에서 북한은 경제가 무너지고 김일성이 사망하고 홍수와 기근이 덮치는 최악의 상황에 봉착했다. 경제·외교·군사 분야에서 북한은 더 이상 남한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북한이 군사·안보적 균형을 되찾고자 착안한 게 핵무기 개발이었다. 100만 명이 굶어 죽는데 핵은 무슨 핵이냐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북한 정권 입장에서 100만 명이 아사하는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매달려야 할 만큼 핵무기 개발은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그 결과 북한 정권은 한·미 동맹과 일종의 핵 등가성(nuclear parity)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균형을 재건했다. 북한이 노린 것은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이러한 세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요즘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은 걸 시사해 주는 것은 60∼70년대 미국이 추진한 대(對)소련 데탕트 정책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반공주의자였던 리처드 닉슨은 미·소 간의 핵 등가성이 확립됨으로써 확실한 공멸(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체제가 구축되자 이 균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소련과의 데탕트 정책을 추진했다. 결과적으로 전략 핵무기 감축을 비롯한 수많은 교류와 협상을 통해 철저한 상호 검증 절차와 신뢰를 쌓아 가면서 냉전 기간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데탕트를 가능케 한 소련의 개방은 훗날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같은 개혁 정책의 초석이 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한반도판(版) ‘데탕트’ 정책이다. 이명박 정권으로서는 엄청난 발상의 전환과 정치적 모험을 요하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보수 정권이기에 감히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다. 여기에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번영이 달려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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