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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독립영화 만세 ④ ‘사람을 찾습니다’ 이서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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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 순간 확 미치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제정신이라면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장편 데뷔작 ‘사람을 찾습니다’로 올 4월 전주국제영화제 최고상인 ‘JJ 스타상’을 받으며 화려한 장편 신고식을 치른 이서 감독. [김경빈 기자]

독립영화 감독들이 제작비를 마련할 때 대개 ‘최후의 보루’로 삼는 게 전세보증금이다. 최근까지 해외 13개 영화제를 휩쓴 ‘똥파리’를 완성하기 위해 양익준 감독이 자취방 전세보증금을 보탰다는 건 꽤 알려진 얘기다. 그들도 사람인데 어찌 거처할 공간과 영화 한 편을 선뜻 맞바꿀 수 있었을까. 이런 ‘우문’에 이서(36) 감독이 돌려준 ‘현답’이다. 그를 일순간 확 돌게 해 저축했던 돈을 몽땅 털고 그마저 모자라 전세를 월세로 바꾸게 만들었던 작품은 장편 데뷔작 ‘사람을 찾습니다’. 올 4월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임순례·신동일 등 기성 감독들과 겨뤄 장편 부문 최고상인 ‘JJ 스타상’을 받았다. 11월 열리는 그리스 ‘테살로니키 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제작비 3500만원으로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살수차까지 불러 비오는 장면도 찍었다. 완성까지 하루도 안 쉬고 딱 보름 걸렸다.

◆주인을 길들이는 개=‘사람을 찾습니다’는 ‘문제작’이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독립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스릴러라는 장르, ‘사람이 개 취급을 당한다’는 파격적 설정, 권력관계를 비틀어 기분 나쁠 정도로 인간 본성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주제의식 등이 그렇다. 동네 부동산을 운영하는 원영(최명수)과 전단지를 붙이며 생계를 이어가는 지적장애인 규남(김규남)이 맺는 관계는 도입부터 놀랍다. 원영은 규남을 말 그대로 ‘개 취급’ 한다. 규남의 목에 개목걸이를 채우고, 꿇어앉힌 채 개처럼 짖으라고 요구한다.

규남은 개와 같이 잠을 자며 심지어 개 사료도 먹는다. 원영의 내연녀(김기연)는 배고파 우는 딸은 방치하면서 애완견은 애지중지한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에서 강아지 연쇄실종사건이 일어나고 곧 사람마저 사라지는 일까지 생긴다. 누가, 왜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일까.

“평소 현실에서 느끼는 모순과 부조리함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애완견이 사람보다 더 극진한 대우를 받는,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영화적으로 극대화해봤어요.”

예사롭지 않은 건 시간이 갈수록 역전되는 듯한 ‘개 주인’과 ‘개’의 관계다. “겉으로는 원조교제와 불륜으로도 채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를 푸는 주인과, 생존을 위해 학대를 고스란히 감수하는 개의 관계로 보일 거에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이 개를 선택한 게 아니라 개가 주인을 택했다는 걸 알게 돼요. 주인은 자신도 모르게 개한테 길들여지고 있던 거죠. 앞으로도 국가와 국민, 인간과 동물 등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뒤집어보는 작업을 계속 해보고 싶어요.”

◆대학로에서 건진 배우 김규남=‘사람을 찾습니다’를 보고 나면 규남을 연기한 김규남이라는 배우가 몹시 궁금해진다. 이감독은 몇 년 전 연극 ‘똥개회의’에 단역으로 나온 그를 보고 “언젠가 영화를 찍게 되면 꼭 저 배우를 출연시키리라” 마음 먹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첫인상이 강렬했다. 실제로 시나리오도 그를 염두에 두고 썼다. “배우가 연기한다는 느낌보다 그냥 그 사람 같다는 느낌을 최대한 주고 싶었어요. 꽃미남 꽃미녀가 아니라도 주연을 할 수 있는 건 독립영화니까 가능한 일이잖아요. 김규남씨가 승낙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탄생하지 못했을 거에요.”

올해로 영화일을 시작한 지 8년째인 이서 감독은 원래 특전사 장교로 6년간 직업군인 생활을 했다. “군 생활을 하면서 난생 처음 생긴 삶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2001년 첫 단편을 만들면서 영화판에 발을 들여놨다. 2004년 ‘미쟝센영화제’에서는 ‘비탈거미’를 발표해 두각을 나타냈고, 2007년에는 단편 ‘달쑤와 쑤진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한 때 꿈이 “별 다는 것(장군이 되는 것)”이었던 그의 현재 목표는 “2시간짜리 영화가 절반쯤으로 느껴질 만큼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소망을 상당 부분 성취한 문제작 ‘사람을 찾습니다’는 7월 23일부터 8월 5일까지 열리는 ‘제1회 키노아이 감독열전’에서도 만날 수 있다.

기선민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2009 독립영화 만세’ 선정은 이상용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유운성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김난숙 ‘영화사 진진’ 대표, 중앙일보 문화부 영화팀 양성희·기선민 기자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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