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당권경쟁 '입'험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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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총재경선 D - 5일인 26일. 네명의 당권 후보는 이날도 모두 서울을 비웠다.

표를 던져줄 대의원들과 직접 대면하기 위해 분.초를 아끼는 며칠째 지방순회 강행군이다.

이회창 (李會昌) 명예총재는 대전과 충남북에서, 이한동 (李漢東).김덕룡 (金德龍) 전부총재는 각각 울산지역과 강원.영동지방에서 대의원 간담회를 가졌다. 서청원 (徐淸源) 전사무총장은 대구를 누볐다.

경선 막바지인지라 후보들의 입도 갈수록 험해지고 있다. 李명예총재의 '단독 우세' 를 막기 위해 나머지 3인의 비난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범당권파 세 후보는 전날에 이어 李명예총재와 이기택 (李基澤) 총재권한대행.김윤환 (金潤煥) 전부총재간 '밀약설' 을 일제히 제기했다. "밀실에서 서로 자리를 약속하고 야합했다" 등으로 비난했다.

'정치권 퇴출' 이란 극단적 표현도 동원했다. 李명예총재측의 '흑색선전 즉각 중단' 촉구가 뒤따랐다.

때맞춰 여권의 한나라당에 대한 압박은 강도를 더하고 있다.

수사당국의 '이신행의원 체포동의안 국회 제출' 방침에 이어 26일 여권은 경제청문회와 방송청문회의 10월중 개최를 결의했다.

"구여권과 관련된 모든 비리를 캐겠다" 며 42명의 증인 명단 작성까지 마쳤다고 엄포를 놓았다.

국회에선 "기아 비자금 46억원이 구여권 의원 4명에게 전달됐고, 청구그룹 장수홍 (張壽弘) 전회장으로부터도 2백억원이 뿌려졌다" 는 의혹이 국민회의 의원을 통해 제기됐다.

김대중 대통령이 24일 기자 간담회에서 정치개혁 및 정계개편 의지를 강하게 표명한 직후 나타나고 있는 일들이다.

이같은 여권의 무차별 압박에도 "당장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는 게 한나라당의 고민이다.

홍문종 (洪文鐘) 의원의 탈당으로 사실상 국회 과반의석 붕괴를 맞았고 이미 마음이 떠난 의원들의 무더기 후속 탈당이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회에서 이뤄질 여권의 파상공세를 막아낼 '거야 (巨野)' 라는 무기가 이제 없어지는 것이다.

이 와중에 빚어지는 계파간 과열 당권경쟁 때문에 당내에선 전당대회 후 큰 후유증을 앓게 될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참에 군살을 빼고 '알짜' 들만으로 강한 야당을 재건하자" 는 소리도 커지고 있다. 어차피 흔들리는 부류는 털어내 버리자는 얘기다.

여권의 강공에 대해선 "어차피 한바탕 소나기는 피할 수 없을 것" 이라고들 본다. '야당화되는 과정' 이라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어쨌거나 향후 대여 (對與) 투쟁이 어떤 양상, 어떤 강도로 전개될지는 새 총재 선출과 조직 정비가 이뤄진 뒤에나 드러날 터인데 누가 당권을 잡건 '강성' 기조로 나가리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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