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은행들 단기 수익만 치중 … 위기 관리는 어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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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13일 오전 국내 18개 은행의 행장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은행·금융당국 합동 워크숍을 했던 지난 2월 15일 이후 5개월 만이다. 유재훈 금융위 대변인은 “은행업계의 현안을 듣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간담회를 개최한 것”이라고 말했다. 형식은 ‘간담회 개최’였지만, 은행권에선 ‘회의 소집’으로 받아들였다. 바쁜 은행장들을 한날한시에 한데 불러모으는 것은 감독권과 규제권을 지닌 정부이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右)이 1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18개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진 위원장, 민유성 산업은행장, 통역, 데이비드 에드워즈 SC제일은행장, 하영구 씨티은행장 . [김성룡 기자]


진 위원장은 먼저 은행들의 경영과 영업 행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듣기에 따라선 경고성 발언이기도 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은행들이 양적 규모 확대와 단기 수익에 중점을 뒀지만 금융위기를 계기로 위험관리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며 “이 과정에서 은행에 대한 금융 소비자들의 신뢰가 저하됐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권이 앞으로 양적 확대 말고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 중장기적 시각에서 건전성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경영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은행장들은 각종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요청했고, 진 위원장도 실무진에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한 은행장은 “은행에 양보만 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수익 확대 등을 위한 배려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고 금융위는 간담회 브리핑에서 밝혔다.

그렇다고 이날 은행장들이 감독당국의 수장에게 마땅한 선물을 받은 것도 아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은행장은 “혹 떼러 갔다가 혹만 붙인 셈”이라고 말했다. 은행장들이 떼려 했던 ‘혹’ 중의 하나는 증권사의 자산관리계좌(CMA)였다. 이는 은행의 수시입출식 예금과 비슷하지만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데다 지급결제 기능까지 갖췄다. 상대적 장점이 있다 보니 수신 증가율에서 CMA가 수시입출식 예금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5월 말 기준으로 CMA는 지난해 말보다 25% 증가한 반면 은행권의 수시입출식 예금의 증가율은 11%에 불과했다.

금리가 낮은 수시입출식 예금의 증가율이 크지 않을 경우 은행은 정기예금·은행채 등 고금리로 돈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 은행의 이익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얘기다. 실제로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2005년 2.81%에서 올 3월엔 1.94%로 역대 최저치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은행장들은 이날 간담회에서 증권사에 비해 은행의 지급결제와 관련한 규제가 과도하며, 증권사들의 CMA 과당 판매경쟁도 규제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진 위원장은 지난주 발표한 CMA 관련 감독 강화방안을 되풀이해 설명했다.

이날 진 위원장은 예정(1시간30분)보다 50여 분이나 더 지나 간담회를 마치면서 “은행의 건전성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녹색금융 등 실물경제 지원은 어떠했는지를 놓고 9월에 다시 만나 얘기하자”고 말했다. 은행장 간담회를 3개월 단위로 정례화하고, 그때마다 성적표를 보겠다는 얘기로 은행들은 받아들였다.

김준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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