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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기업은 지배구조 재편 중] 3. 투명성 더 높인다 - 미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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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 미국 코네티컷주 페어필드시 GE 본사

미국 뉴욕에서 동북쪽으로 90km쯤 떨어져 있는 아담한 전원도시 페어필드. 이곳에 발명왕 에디슨이 126년 전 창업한 전구회사가 모태인 제너럴 일렉트릭(GE) 본사가 자리잡고 있다. GE는 미국에서 최고(最古)이자 최대(最大) 기업으로 유명하지만 요즘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기업지배구조를 가진 회사로 주목받고 있다. GE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각국에 '가이드 라인'으로 제시한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을 만들 때 모델로 삼았던 기업으로 국제적인 연구기관들이 지배구조 우수 기업을 선정할 때면 늘 수위를 차지했다. 그 비결을 묻자 이 회사의 데이비드 프레일 재무담당 홍보부장은 "일찌감치 소유와 경영이 완전 분리되다 보니 소유주인 주주들(현재 약 400만명)과 끊임없이 대화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 결과 최고 수준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갖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GE에도 2001년에 터진 엔론.월드컴 등의 대형 회계부정 사건은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증권시장을 떠받쳐온 기본적인 신뢰구조가 무너지면서 GE의 주가도 덩달아 휘청했다.

하지만 GE는 그 명성에 걸맞게 신뢰 회복에 앞장섰다. 정부와 감독 당국의 조치를 기다리지 않고 시장의 요구를 파악해 스스로 움직였다. 제프리 이멜트 GE회장은 2002년 '투명 경영을 통한 정면 돌파'의지를 밝히고 ▶정보 공개의 확대▶스톡옵션 등 경영진 보수의 규제▶ 독립적 사외이사의 과반수 확보 등을 행동에 옮겼다.

이에 따라 연차보고서 정보량이 두배로 늘었고 투자설명회(IR) 등 주주들과 접촉도 한 해 250회를 넘어섰다. 이사회 구성원의 70%를 넘는 독립적 사외이사에는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를 영입해 주주의 권익을 확실히 대변할 수 있도록 했다.

사외이사들의 면면을 보면 ▶마케팅 분야 앨런 리플리 전 P&G 회장▶재무분야 더글러스 와너 전 JP모건 회장▶서비스분야 랄프 라센 전 존슨앤존스 회장▶공공분야 샘 넌 전 상원의원 등 쟁쟁한 인물들로 채워졌다.

프레일 홍보부장은 "우리는 주주와 경영진의 이해관계를 정확히 일치시킴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한편 위기 극복의 또 다른 주역으로 미국 서부의 캘퍼스(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기금)를 꼽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주도(州都)인 새크라멘토에 자리한 캘퍼스는 '주주 행동주의'를 표방하며 엔론 사태 이후 미국의 지배구조 개혁을 이끌어냈다.

캘퍼스는 운용자산이 총 1700억달러(약 200조원)에 달하는 미국 최대의 기관투자가로 1800여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어지간한 공개기업의 주식은 모두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캘퍼스의 브래드 파체코 홍보부장은 "잇따른 기업 스캔들은 기업지배구조가 왜 중요한지를 일깨워줬다"며 "정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뉴욕증권거래소(NYSE) 등에 제도 개혁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다른 기관투자가들도 캘퍼스의 움직임에 적극 호응했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미국 정부는 2002년 7월 기업지배구조 개혁법인 '사베인스 옥슬리법'을 제정했다. SEC와 NYSE도 공시 및 상장 관련 규정들을 고쳐 투명성을 높이지 않은 기업은 미국 증시에서 살아남기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급격한 제도개혁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회계감사 등 공시 비용이 30% 이상 더 들고 주주들의 시시콜콜한 경영 간섭성 제안도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폴리 앤드 라드너 법무법인이 미국의 9000여 경영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7%가 "새 제도가 너무 엄격하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최근 미국에선 주식 상장을 꺼리거나 상장을 철회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을 정도다.

기관투자가(주로 펀드)들이 기업에 투명성을 요구하는 만큼 기관투자가 스스로의 행동 또한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는 요구도 제기됐다. 급기야 SEC는 펀드 지배구조 개혁안을 만들어 뮤추얼펀드 이사회의 3분의 2 이상을 독립적 사외이사로 하고 이사회 의장 또한 반드시 사외이사로 두도록 했다. 헤지펀드 등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정보 공개와 정기검사를 의무화하는 규제안을 마련 중이다.

뉴욕.페어필드.새크라멘토=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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