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인류는 소멸에 가까워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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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남보다 먼저 울고, 앞서 앓는다. 풀벌레 울음소리의 사소한 변화에도 귀 기울이는 게 시인이다. 그중에서도 날선 감각으로 세상과 호흡하는 한국의 문태준(39) 시인과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인 이족 출신 지디마자(48) 시인이 만났다. 중국 칭하이성의 수도 시닝에서 열리고 있는 제 3차 한·중작가회의에서다. 올해 테마는 ‘인간과 자연, 화해로운 세상’이다. 이 두 시인의 시세계는 그 주제와 맞춤하게 들어맞는다. 때마침 지디마자의 시선집 『시간』이 한국어로 번역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문학평론가 오생근(56) 서울대 불문과 교수와 함께 만났다.

문태준 시인은 대담에서 “지디마자 선생은 이족을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세계와 대화하는 시인이란 느낌을 받았다”며 “나고 자란 공간의 제한이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던 차에 일정부분 해답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지디마자는 "이 시대는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는 문 시인에 공감한다”고 응수했다. 사진 왼쪽부터 지디마자, 오생근, 문태준씨. [시닝(중국)=이경희 기자]


오생근(이하 오) : 지디마자 시인의 고향은 량산이고, 문태준 시인의 고향은 경북 김천이지요. 고향의 전통과 자연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지디마자(이하 지) : 시인으로서 저는 늘 여행중입니다. 현실적인 고향과 거리감을 느낄 때 되려 정신적인 고향과 더 가까워져요. 제 시에서 이족이 현대화 과정을 겪은 뒤 느낀 고민과 갈등, 복잡한 정신세계를 주로 묘사해요. 결국은 자연의 회귀, 정신적인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노래하는 것이죠.

문태준(이하 문) : 저도 어릴 때부터 자연을 만났어요. 해질 무렵 어머니가 “꽃으로 잎으로 살아라”는 노래를 불러주시곤 하셨죠. 비는 풀밭에 내리되, 키가 크고 작은 풀을 가리지 않지요. 저는 시를 통해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공평하다’고 여긴 옛 가치를 되돌아봅니다. 이 시대에는 속도를 늦추고 늦춰, 자연의 보폭을 다시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 : 저도 과도한 현대화나 산업화에 반대해요. 인간과 자연의 거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인류가 소멸되는 시간도 멀지 않았다고 믿거든요.

문 : 저는 시를 통해 사람마다 주어진 삶의 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내일에 대한 삶의 희망이 남과 내가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 바로 다른 사람을 ‘짐작’하는 마음이 필요하죠. 그래야 격발하는 폭력도 그치고, 내면의 평화심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오 : 언제 시인으로서 가장 기쁘고 자신감을 갖습니까.

지 : 인간이란 자연에도, 사회에도 속해있는 존재예요. 자연과 사회가 조화롭게 살면 행복하지요. 그럴 때면 시심이 꿈틀댑니다.

문 : 시닝까지 오는 길에 본 풍경이 하나 떠오르네요. 어떤 이가 자두를 따서 가는 길에 누구를 만났는지, 길 중간에 털썩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그렇게 다소 느린 풍경을 통해 바쁘게 살면서 잃어버렸던 무언가가 회복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풍경이 나를 치유하듯, 내 시가 다른 이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때 시인으로서 가장 행복하지요.

시닝(중국)=이경희 기자

◆한·중작가회의=2007년부터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매년 열리고 있다. 중국 시닝에서 열린 올해 제 3차 회의는 파라다이스문화재단·중국칭하이성작가협회·중국소수민족문학회의 공동주최로 9일 개막했다. 한국측 단장인 소설가 김주영씨를 비롯해 평론가 김병익·김치수·오생근·홍정선, 소설가 박상우·구효서·서하진·조경란·천운영, 시인 이시영·박라연·김기택·안도현·문태준씨 등이 참가했다. 지디마자 시인이 단장인 중국 작가단에는 소설 『색에 물들다』로 국내에 소개된 아라이, 시인 옌리, 소수민족문학 대표시인으로 꼽히는 아얼딩푸·이런 등이 포함됐다.

◆지디마자=중국 소수민족문학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시인이다. 중국시가학회 부회장, 칭하이성 부성장이다. 시집 『첫사랑의 노래』 『로마의 태양』 등이 있다. 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 등 여러 언어로 시집이 번역됐다.

◆문태준=1994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맨발』『가재미』가 있다. 미당문학상·노작문학상·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오생근=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평론 등단. ‘문학과 지성’ 창간 동인. 저서 『삶을 위한 비평』『현실의 논리와 비평』『문학의 숲에서 느리게 걷기』등과 역서『감시와 처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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