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폭주 기관차, 차두리 희망봉 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16강전. 한국이 0-1로 뒤진 후반 38분 거스 히딩크 감독은 주장 홍명보를 빼고 차두리를 투입했다. 폴란드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후반 44분 출전해 2~3분 남짓 뛴 차두리에게는 사실상 첫 번째 월드컵 출전이었다.

히딩크 감독의 승부수는 절묘했다. 차두리는 폭주 기관차처럼 측면을 돌파하며 지칠 대로 지친 이탈리아의 빗장 수비에 균열을 냈다. 후반 43분 설기현의 동점골이 터졌다. 경기 종료 직전에는 차두리가 문전에서 강력한 오버헤드킥을 쏘았다. 너무 잘 맞은 슈팅은 이탈리아 골키퍼 부폰의 가슴에 안겼다. 아주 조금만 빗맞았다면 이탈리아전의 영웅은 연장 골든골을 터뜨린 안정환이 아니라 차두리가 됐을 것이다.

일부 팬은 차두리를 두고 “뛰는 것밖에 못 한다”고 비아냥댔지만 히딩크 감독은 ‘너무 잘 뛰는 차두리’를 ‘조커’(후반 교체 투입요원)로 활용하며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을 만들었다.

2006년 마인츠에서 수비수로 전환

2010 남아공 월드컵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동국·최성국 등 최근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지만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올드 보이’ 이야기로 축구계 안팎이 떠들썩하다. 그러나 차두리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2006년 10월 가나전 이후 대표팀에 뽑히지 못한 차두리는 시나브로 잊혀진 존재가 됐다.

어지간한 축구 매니어가 아니면 차두리의 근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그가 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와 더불어 유럽 4대 리그에 포함되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아한 일이다.

2002년 월드컵을 마치고 독일 분데스리가 빌레펠트에 둥지를 튼 차두리는 프랑크푸르트·마인츠·코블렌츠 등 1, 2부 리그를 오가며 무려 8년 동안 경험을 쌓았다. 지난 시즌에는 2부 리그 코블렌츠에서 34경기에 출전해 2골4도움을 기록했다. 출전한 34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나섰다. 그가 얼마나 든든한 신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2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부 리그로 승격한 프라이부르크는 차두리를 스카우트했다.

한국에선 상대적으로 저평가

차두리가 고려대에 진학했을 때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자질이 부족하지만 아버지 덕분에 고려대에 갔다고 눈을 흘겼다. 고려대에 재학 중이던 아마추어 차두리를 대표팀에 발탁한 사람은 학연·지연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히딩크 감독이었다.

청소년·올림픽 등 각급 대표팀 발탁은커녕 고려대에서도 주전 자리를 안정적으로 꿰차지 못했던 차두리가 월드컵 대표에 뽑히리라고 예견한 국내 지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만일 차두리가 월드컵 이후 한국에 남았다면 어떤 선수로 성장했을까. “독일에서처럼 꾸준하게 팀의 주전으로 뛰면서 기량을 성장시키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국내 축구 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차두리 역시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대표팀에 뽑히기 전에는 선수 생활을 접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유럽에서는 축구를 퍼즐이나 퀼트(조각이불)에 비유하곤 한다. 개성이 다른 선수를 모아 장점과 단점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게 감독의 구실이라는 거다. 히딩크 감독의 눈에도 차두리의 단점이 보였겠지만 국내 지도자와 달리 그의 장점을 높이 샀다. 국내에 머물렀다면 사사건건 아버지와 비교하는 대중의 시선과 여론도 차두리를 괴롭혔을 것이다. 또 독일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유럽에서 보낸 차두리에게는 한국이 독일보다 더 적응하기 어려운 낯선 땅이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차두리의 포지션은 측면 공격수였다. 독일로 진출한 뒤에도 한동안 최전방 공격수를 맡았다. 1980년대 분데스리가를 수놓은 ‘차붐’의 활약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독일의 팬들은 ‘리틀 차붐’이 아버지만 못 하다며 실망했다. 차두리에게는 샨첸 토드(Chancen Tod)라는 치욕적인 별명이 붙기도 했다. 찬스를 죽이는 선수라는 뜻이다.

힘겨운 고비였지만 차두리는 이겨 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차두리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2004~2005 시즌 29경기 8골을 터뜨리며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힘을 보탰었다. 2005~2006 시즌에는 1부 리그에서 27경기에 출전해 3골을 뽑아냈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2006 독일 월드컵 엔트리에서 차두리를 제외했다.

차두리는 낙담했지만 좌절하지는 않았다. 월드컵 기간 중 MBC 해설위원으로 깜짝 변신해 아버지와 함께 마이크를 잡았던 유쾌한 청년은 2006년 여름 마인츠로 이적하면서 공격수가 아니라 오른쪽 풀백으로 새 출발했다.

마인츠에서 보낸 1년 동안 차두리는 부상에 시달리며 제 몫을 못 했고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며 2007년 여름 코블렌츠로 말을 바꿔 탔다. 오른쪽 풀백 변신은 마침내 코블렌츠에서 결실을 맺었다. 독일 축구에 정통한 이은호 수원 삼성 대리는 “수비수 변신 후 한동안 고전했지만 수비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자 공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경기를 살펴보면 자신감도 붙었고 크로스도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차두리와는 스치기만 해도 부상”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정해성 코치의 갈비뼈에 금이 갔다. 피지컬 트레이닝을 하면서 차두리와 가슴을 부딪힌 게 화근이었다. 차두리와는 ‘스쳐도 부상’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돌았다. ‘인간 병기’ ‘인간 폭탄’이라는 별명이 붙은 차두리에게는 훈련 때 동료가 다치지 않게 특별히 주의하라는 코칭스태프의 엄명이 떨어지기도 했다. 통나무처럼 단단한 차두리는 아버지의 스피드와 지칠 줄 모르는 스태미나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는 32개국 가운데 유럽은 13개국에 이른다. 한국은 조별 예선에서 유럽 팀 2개국과 한 조에 묶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을 무패로 통과했지만 월드컵에서 상대할 선수들은 몸싸움 능력부터 확연하게 다르다. 그 누구와 맞붙어도 어깨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유럽 선수를 상대한 경험이 많은 차두리의 가세는 대표팀 수비진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현재 대표팀에서 좌우 풀백 요원은 이영표·김동진·오범석이다. 김동진은 어느 정도 체격이 크지만 이영표와 오범석은 시쳇말로 씨알이 작은 선수다. 94년 미국 월드컵을 지휘했던 김호 전 대표팀 감독은 “포백을 쓸 때 좌우 풀백 중 한 명은 체격이 크고 몸싸움 능력이 좋은 선수를 활용해야 팀 전체의 균형을 이루고 경기를 풀어 나가기 편하다”고 말했다.

허정무 감독은 대형 공격수를 강조하지만 수비에서도 대형 수비수가 필요하다. 코너킥·프리킥 등 세트피스를 허용했을 때 차두리처럼 강인한 수비수가 페널티박스를 지켜 준다면 골키퍼의 부담도 확 줄어든다.

게다가 남아공 월드컵 개막전과 결승전이 열리는 요하네스버그는 해발 1700m가 넘는다. 인근 개최 도시 블룸폰테인·프리토리아·루스텐버그도 1200~1400m에 이른다. 10개 월드컵 경기장 중 6개가 1200m가 넘는 고지에 있다. 해발 고도가 높을수록 산소가 희박해져 1500m 정도의 고지대에서는 평지보다 1.5배나 체력 소모가 많다.
공격수 출신이기 때문에 경기 상황에 따라 언제든 공격수로 변신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라는 것도 차두리의 장점이다.

정해성 코치 “경쟁력 보이면 태극마크”

허정무 감독 역시 차두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항간에는 ‘차범근 아들인 게 껄끄러워 차두리를 안 뽑는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있지만 허 감독은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에 오를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거래할 사람이다.

3월에는 박태하 코치를 독일로 파견해 차두리의 경기력을 파악했지만 대표팀에 중용하지는 않았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일단 기존에 손발을 맞춰 왔던 선수들을 중심으로 안전 운행했다. 또 차두리의 소속팀 코블렌츠가 분데스리가 2부 리그 중하위권을 맴돌았고, 단 한 경기만 보고 덜컥 대표팀에 뽑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정해성 코치는 “두리는 장점이 많은 선수다. 또 이번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1부 리그에서 뛴다. 다른 선수보다 경쟁력을 보인다면 당연히 대표팀에 뽑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두리에게는 8월 개막하는 2009~2010 분데스리가가 남아공 월드컵행을 좌우하는 시험대다.

차두리는 대표팀 발탁을 둘러싼 논란에 휩쓸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을 찾았을 때도 “대표팀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조용한 팀에서 시즌을 보낸 것 같다”는 말만 남겼을 뿐 2010년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해설을 할 때 이탈리아전 오버헤드킥을 회상하며 “4년 뒤 꼭 보여 드리려 했는데 앞으로 4년을 더 기다려야겠네요”라며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결혼한 차두리는 내년 1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축구화 끈을 바짝 묶고 있다. 자신에게 차범근 감독이 그랬듯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

이해준 기자 hijee72@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