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상반기 ‘내 마음의 책’ 다섯 권 꼽는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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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요즘 책시장의 분위기를 말해주는 난센스 퀴즈가 이렇다. “요구르트와 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유통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책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놀랍도록 다품종소량생산이라는 점이다. 컴퓨터·타이어 등 공산품도 모델이 다양하겠지만, 어디 책을 따라올까? 지난해 나온 책만 4만 3000여종이라서 관심·취향에 따라 무한선택이 가능하다. 벌써 7월초,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중심으로 상반기 독서 농사를 점검해볼 참이다.

내 취향 탓이겠지만 묵직한 책들이 주로 기억난다. 하긴 지난해도 그러했다. 짜릿했던 ‘2008 내 마음의 책’을 꼽으라면 주경철 『대항해시대』, 에이미 추아 『제국의 미래』, ‘뿌리깊은나무’ 발행인 한창기 추모글 『특집! 한창기』 세 권이다. 『대항해시대』는 한국인 시각으로 쓴 서양사 서술의 전범(典範)이고, 『제국의 미래』는 관용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황홀한 역사책이다. 『특집! 한창기』는 20세기 문화주의자 한창기 회고로 훌륭했다.

올해 상반기의 책도 무거운 편인데, 이삼성의 『동아시아 전쟁과 평화』부터 꼽고 싶다. 상을 준다면 ‘스케일상’깜인데, 국제정치학·외교사·한국문화론 등 걸치지 않은 영역이 없다. 현미경(분과학문) 대신 망원경(통섭)을 들고 넓은 시야를 확보한 너비와 깊이로 보면 올해의 책은 따 논 당상이다. 반면 ‘개척상’은 최식의 『조선의 기이한 문장』의 차지가 아닐까 한다. 조선의 황금시대 18세기에 이은 19세기 초에 등장했던 조선의 걸출한 글쟁이 홍길주를 발굴해 시장에 내놓은 기여만해도 평가 받아야 한다.

종교·철학 분야 읽을거리로는 오강남의 『또 다른 예수』가 나는 좋았다. 『장자』『도덕경』『예수는 없다』의 저자로, 고정 팬을 거느린 오강남의 책 중에서도 백미다. 도마복음에 담긴 신비주의(그노시즘)에 대한 주석인가하면, 동서양 고전과 인문학의 아름다운 향연이라서 내 눈에는 ‘으뜸상’깜이다. 그밖에 ‘의외의 상’을 준다면 미국학자 로버트 퍼트남의 『나 홀로 볼링』이다. 왜 의외인가? 이토록 시시해 보이는 볼링운동에서 미국사회의 해체 현상까지를 분석해낸 내공이라니….

이 책이 첫선 보였을 때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급이라는 찬사가 나왔다는데, 왜 그런지는 직접 읽어봐야 안다. 자신에 찬 나머지 거의 선동적으로 들리는 미국 오디오잡지의 한 리뷰가 생각난다. “당신이 가진 벤츠를 이참에 처분해라. 벤츠가 없다면 마누라 밍크코트를 팔아서 이 스피커를 구입하라!” 천만다행인 것은 이런 책들은 굳이 벤츠나 밍크코트를 팔지 않아도 사볼 수 있다는 점이다. ‘2009 내 마음의 책’ 네 권에 더해 한 권의 보너스가 있다. 이미 많은 분이 선택했을지도 모를 그 맛있는 책을 다음 주 함께 음미해보고 싶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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