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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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4장 서까래를 치면 기둥이 운다

한통속끼리 능청스럽게 주고받는 연극대사라는 것을 가장 근접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승희의 이마에는 처음부터 땀이 배어나고 있었다.

맥반석구이 화덕에서 솟아오르는 열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사가 어쩐지 위태위태하여 고개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대사가 시작되고부터 등줄기를 적시던 진땀이 정오를 넘기면서도 멈출 줄 몰랐다.

창피스럽고 자존심 상하고 울적하기도 해서 같은 일행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주문진에서 가게나 지키고 있을 걸 대중없이 동행을 했구나 싶었다.

이마에선 줄곧 땀방울이 떨어져 불에 달궈진 맥반석을 적시는 것이었다.

저러다가 배짱 가진 위인이라도 다가와 너희들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고 시비라도 걸면 어쩌나.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그 짓을 수시로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만류시킬 겨를조차 없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듯이 너도나도 손을 내밀며 차례를 기다리는 조무래기들과 장꾼들이 화덕 앞에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푼전이든 목돈이든 잇속을 차리자고 시작한 장사인 것은 틀림없겠는데, 이름도 성도 모르는 장꾼들에게 벌로 퍼먹여도 되는 건지 미심쩍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공짜로 맛보시라고 외쳐대는 태호의 목소리는 시종여 일하게 장바닥을 긁고 있었다.

몇 마리가 공짜로 나가고 몇 마리가 팔린 것인지 수효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해거름녘부터는 철규까지 합세하여 오징어를 구워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승희 자신의 마음이었다.

그토록 불안하던 마음이 철규가 곁으로 와서 거들기 시작하면서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 연극을 하다가 사기꾼으로 몰리면 필경 파출소 구경을 할거예요. 마음 속으로 준비해 두었던 말조차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힐끗 철규를 곁눈질했다.

그의 이마에도 땀이 흐르고 있었다.

저 이마에 흐르고 있는 땀을 닦아줄 수 있다면 그것도 행운이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런 뙤약볕 아래에서 비록 열기를 내뿜고 있는 화덕 앞이지만, 두 사람이 부부처럼 나란하게 서서 오징어를 굽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슴 뿌듯했다.

그 정체를 명료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뿌듯하다는 감정도 행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자신의 목에 걸어 두었던 수건을 벗어 철규에게 건네주었다.

당연한 듯 전혀 어색한 표정을 짓지 않고 수건을 건네받는 철규의 모습이 뇌리에 깊숙하게 와 박혔다.

공짜로 줄 오징어를 하염없이 구워내고 있다는 허탈감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 사이에 어느덧 장터에는 희뿌연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차일을 걷고 있었고, 화덕 앞에 줄지어 있던 장꾼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태호는 좌판 가녘에 등을 돌리고 앉아 비로소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었다.

하루의 시간이 저물어가고 있는 이면도로 저편으로 장짐을 높다랗게 실은 리어카 한 대가 거북처럼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한동안 리어카를 바라보고 서 있던 승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리어카를 혼자 힘으로 힘겹게 끌고 있는 사람이 그녀처럼 젊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좋은 하루였죠?" 고개를 돌렸더니 어느새 화덕 앞에 태호가 다가서 있었다. "그런데, 두 분이 구워낸 버터구이 정말 소문처럼 맛있는 거예요?" 그러게 정말 하면서 승희는 철규를 돌아보며 처음으로 웃었다.

그거 듣던 중 좋은 질문이었어요. 내가 손수 한 마리 구워드릴테니까 맛보세요. 맛보신 뒤에 동해바다 토종 주문진 오징어 애용하시는 거예요. 철규는 너스레를 떨며 집게로 오징어 한 마리를 집어 화덕 위에 올려 놓았다.

흡사 살아있는 것처럼 자신의 몸 전체를 쭉 펴서 한껏 기지개를 폈다가 다시 오그라드는 오징어를 세 사람은 함께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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