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서비스에 실명제 바람 거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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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슈퍼마켓서 '농심 생생 우동' 을 사기위해 유통기한을 확인하던 주부 이화영 (32.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씨는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98.11.07까지' 라는 표시밑에 '안양3A1 윤승민' 이라는 글자가 나란히 있었던 것. 이씨가 주의깊게 살펴본 결과 이같은 사람 이름은 면류 포장지 뿐 아니라 화장품.세탁세제.식용유.참기름.스넥류.초콜릿 등 슈퍼에서 판매되는 상당수 공산품에 표시돼 있었다.

"생산자 이름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왕이면 이름이 있는 제품으로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믿음이 가더라구요. " 공산품과 서비스에 생산자와 서비스 주체가 분명하게 표시되는 '생산자실명제' . '서비스실명제'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미 제일제당.농심.빙그레 등 식품업체가 공장 생산라인 책임반장의 이름을 넣는 생산자실명제를 확대 실시하고 있고 병원.외식업체.운수업체가 뒤를 이어 서비스실명제에 손을 걷고 나섰다.

농심은 지난달 1일부터 라면.스넥 전제품에 이 제도를 확대했다. '비틀즈' (캬라멜). '새알쵸콜릿' 등 기온에 따라 변질되기 쉬운 일부에만 생산자 이름을 넣었던 동양제과도 곧 전제품에 생산자를 표시해 내놓을 계획이다.

그런가하면 서울대병원은 중환자병동 게시판마다 간호직원의 사진과 이름을 붙여 놓기로 했다.

불친절하고 복잡한 병원의 대명사라는 이미지를 떨어내기위해 서울대병원이 각고의 각오로 시작하는 이른바 '간호실명제' 이다.

서울대병원의 한관계자는 "점차 전 병동으로 확대 실시해 친근한 병원을 만드는데 노력할 것" 이라고 말했다. 서비스불만 분야 1위를 기록하곤 했던 대중교통수단도 실명제 대상이 됐다.

건설교통부가 지난 20일 '운행실명제' 실시를 발표했고 62개 버스회사가 이미 하차하는 뒷문 윗쪽에 운전기사 사진.이름.회사연락처를 적은 푯말을 부착하고 운행 중이다.

승객은 난폭운전을 일삼는 문제의 운전기사에 대해 관계당국이나 회사에 즉각 책임을 물을 수있다. 또 외식업체인 '베니건스' 는 탁자에 서비스하는 종업원과 조리한 사람의 사진.이름이 담긴 세잎클로바 모양의 팻말을 비치해두고 있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자기이름을 거는 '놀던 자리 실명제' 도 올해 처음 시작됐다.

충북 영동군은 상촌면 물한리 964의 1일대 4백여㎡의 물한계곡 야영장을 45구역으로 나눠 이들 자리를 이용하는 야영객들에게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 인적사항을 기록으로 남기도록했다.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가 놀던 자리를 깨끗하게 뒷처리하라는 '놀던 자리 실명제' 다.

군관계자는 "이 제도가 실효를 거두면 군내 10여개 자연발생 유원지에 대해서도 시행을 확대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공산품으로부터 노는 자리까지 우리 생활의 전영역에 이처럼 실명제가 확대되는 것은 우리사회의 투명성 제고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서울대 손봉호 (孫鳳鎬) 사회교육과 교수는 "책임 소재가 분명해야 보다 투명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며 "국민들의 욕구에 부응해 점차 이같은 실명제가 더 확대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제일제당 신상품개발팀 백상철 (白尙喆) 과장은 "마켓팅 효과를 노려 시작됐지만, 근본적으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려는 우리 사회의 커다란 흐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 말했다.

이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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