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임] 코리아 2050 클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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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 ‘코리아 2050클럽’ 멤버들. 왼쪽부터 로버트 홍, 박영숙 실장, 이영탁 전 실장, 박종백 변호사, 의사 전신철씨. 안성식 기자

지난주 수요일(21일) 점심시간. 서울 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비교적 낯익은 얼굴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영탁 전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 박영숙 주한 호주대사관 문화공보실장, 국내 최연소 여성박사이자 첫 20대 대기업 임원으로 유명한 윤송이 SK텔레콤 상무, '8체질'연구가인 한의사 조재의씨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소아과 전문의 전신철씨, 미국 시민권자로 한.이라크 석유컨소시엄단에서 일하는 로버트 홍, 박종백 변호사….

공통분모를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10여명을 하나로 엮어낸 연결고리는 '미래에 대한 관심'이다. 이들은 '코리아 2050 클럽'의 멤버들이다. 원래는 2050년을 예측하고 대비하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인데 멤버 연령층이 20대에서 50대까지 망라돼 있어 이름의 의미가 더욱 그럴 듯해졌다고 박영숙 실장은 말한다.

사실상 첫 공식 모임이었던 이날, 박 실장이 발제자로서 대화를 이끌었다.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작성했다는 미래예측 보고서 '2015년 리포트'의 내용을 요약.정리해 발표했다.

그는 "이 보고서는 2015년이면 미국의 거의 모든 가정에서 형제.자매 없는 외동 아이를 갖게 될 것이므로 방계 가족까지 함께 모여 즐기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없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면서 "이는 파티 산업 관계자들에게 새로운 수요 변화에 대비하라는 조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결혼율이 10%대로 떨어지고 대다수가 법적 혼인 없이 사실혼 관계만 유지할 것이어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설 자리가 없어지고 '유언 전문 변호사'가 각광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들어 있다"고 덧붙였다.

박 실장의 발표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결혼율이 그렇게 낮아진다면 앞으로 결혼식장도 다 망할 것 아니냐","외동 아이를 갖는 추세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2050년 무렵에는 지금의 차례 풍습도 다 사라지겠다"며 한마디씩 했다.

'8+1클리닉'이라는 병원을 운영 중인 조재의 원장은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산아제한을 장려했는데 지금은 인구 감소가 문제가 되고 있다. 10년 앞도 못 내다보고 살아왔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모임의 막내 격인 로버트 홍(26)도 입을 열었다. 그는 "비즈니스의 기본은 미래의 수요 예측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날그날 닥친 상황을 처리하는 데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여동생인 고 유순한 여사를 친할머니로 둔 그는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2년 전부터 한국에서 석유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곧 이어 미래에 대한 무관심이 상상력의 빈곤으로 이어져 세계적인 공상과학(SF) 소설이나 영화가 우리나라에선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며,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과거 회귀 쪽으로 흐르는 것이 큰 문제라는 얘기가 나왔다.

박 실장은 "미국은 1997년 '2010년 리포트'에 이어 지난해 말 '2015년 리포트'를 냈고, 호주는 2020년, 영국은 2050년을 예측하는 리포트까지 내고 있는데 우리 정부만 이런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 모임의 결성에는 이 전 실장과 박 실장이 산파역을 했다. 두 사람이 올 초 한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나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화제로 얘기를 나누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스터디그룹을 만들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 전 실장은 단골로 다니는 병원의 조 원장 등이 미래의학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떠올리고 참가를 권유했으며, 박 실장도 평소 알고 지내던 윤송이 상무 등을 끌어들였다. 의외로 호응이 높았다고 한다.

이들은 매달 한 차례 정례 모임을 통해 자료를 교환하고 토론도 벌일 계획이다. 조만간 회원 전용 홈페이지를 만들기로 했으며, 모임이 잘 운영되면 아예 '미래연구소' 같은 본격적인 조직으로 키워나갈 생각이기도 하다.

이정민 기자 <jmle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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